예수님을 바라보라
행복한 신앙생활은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요 15:5).
이렇게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하게 됨을 믿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데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왜 의심이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한다는 것을 예수님의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혼란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우리 안에 임하시기에 예수님의 일을 우리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애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내 생각과 마음이 육신의 본성 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육신의 본성대로 살려고 하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예수님이 의식되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불순종하기가 순종하는 것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불순종하려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너무 불편합니다. 그것이 괴로워서 고민하다가 결국 순종하게 됩니다. 그런 일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니 이제는 순종하는 것이 불순종하는 것보다 더 편하게 느껴지게 된 것 같습니다.
여전히 “예수님을 바라보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요?”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질문 자체가 여전히 나의 성공이 예수님보다 더 우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도 진정한 열매는 적은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에 충실해야 하고 그런 교회 공동체를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해야 합니다. “주님만 바라보라”라는 말은 상투적인 표현 같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말기 암 진단받았다면, 전쟁 포로가 되어 아무런 미래도 자유도 없게 되었다면, 노숙인이 되어 갈 데도 없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면, 마치 광야를 지나가는 사람의 심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이들에게도 은혜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직 예수’로 사는 것이 저절로 되니 말입니다. 그러니 꼭 이런 극단적인 상태가 되지 않고 아주 형편이 좋을 때도 그렇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지혜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가나안에 사는 지혜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하고 있다면 지금 갑자기 큰 어려움에 처한 것 같은 심정으로 믿음의 눈을 열어주셔서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 복 받으세요 한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