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교회를 보살피기 위해 할 일은?
밀레도 항구에서 바울이 남긴 유언의 첫마디는 격려가 아니라 경고였습니다.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주목할 것은 순서입니다. '자기를 위하여'가 '온 양 떼를 위하여'보다 앞에 있습니다. 이것이 이기주의로 들린다면, 항공기 안전 안내 방송을 떠올려 보십시오. 기압이 떨어지면 산소마스크를 먼저 자기가 착용한 뒤 옆 사람을 도우라고 합니다. 내가 먼저 숨을 쉬어야 남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받지 못한 성도가 교회를 보살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교회를 보살피기 위해 실제로 할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 교회의 가치를 기억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것이라 했습니다. 헬라어 디아 투 하이마토스 투 이디우는 하나님 자신의 피, 혹은 자기 소유이신 아들의 피로 읽힙니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습니다. 교회의 정가표에 붙은 값이 하나님의 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자리는 하나님이 피로 결제하신 자리입니다. 교회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무서운 일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교회에서 맡겨진 작은 일 하나도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둘째, 밖에서 오는 것을 경계하는 일입니다.
(행 20: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사나운 이리'는 이단과 거짓 선지자입니다. 오늘날에는 더 세련된 옷을 입고 옵니다. 성경 공부를 하자며 접근하고, 유튜브 영상으로 들어오고, 위로와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옵니다. 외로운 성도, 상처받은 성도가 첫 표적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보살피는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 홀로 앉아 있는 지체를 살피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셋째,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왜곡하는 말을 하고, 삶이 어그러진 리더를 경계하는 일입니다.
(행 20: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어그러지다'의 헬라어 디아스트레포는 '왜곡하다'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사람들을 복수형으로 썼습니다. 어쩌다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남을 지목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내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말씀을 끌어다 쓴 적은 없습니까?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사실을 조금 비틀어 전한 적은 없습니까?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대개 밖에서 온 이리가 아니라, 안에서 자란 작은 왜곡입니다.
넷째, 눈물로 일깨어 기도하는 일입니다.
(행 20: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은 '각 사람'을 훈계했습니다. 군중이 아니라 한 사람씩이었습니다. 성도가 교회를 보살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 이름을 기도 목록에 올리십시오. 판단은 사람을 죽이지만 기도는 사람을 살립니다.
다섯째, 말씀에 자신을 의탁하는 일입니다.
(행 20: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바울은 장로들을 유력자에게 부탁하지 않고 말씀에 부탁했습니다. 여기서 세우는 주체가 누구인지 보십시오. "여러분이 든든히 서라"가 아니라 "그 말씀이 여러분을 세우시리라"입니다. 교회를 보살피는 힘은 우리 열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 앉는 시간에서 나옵니다.
여섯째, 삶으로 본을 보이는 일입니다.
(행 20:33-35)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바울이 "이 손으로"라고 했을 때 장로들은 그의 굳은살을 보고 있었습니다. 설교는 귀로 들었지만 증거는 눈으로 보았습니다. 성도가 교회를 보살피는 마지막 방법은 결국 자신의 삶으로(함께 해 온 시간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교회를 보살피는 일은 특별한 사람만의 몫이 아닙니다. 먼저 자기가 은혜받고, 옆자리를 살피고, 이름을 부르며 깨어 기도하고, 말씀 앞에 자신을 점검하고, 손해를 감수하며 나누어 주는 삶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기 피 값으로 사신 우리 중앙교회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늘 복 받으세요 담임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