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삼창은 마음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단 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예배 때 합심기도의 시작에서 우리는 종종 “주여!”를 세 번 외치게 됩니다. 이 장면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당황합니다. “왜 세 번일까?”, “소리를 크게 내는 게 기도일까?”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오랜 시간 사용해 온 ‘주여 삼창’은 단순한 형식이나 분위기 조성이 아니라, 기도의 방향을 온전히 하나님께로 다시 맞추는 신앙적 행동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은 언제나 위기의 순간, 전환의 순간에 등장합니다. “여호와여!”라는 부름은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라 관계의 언어입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말이기 이전에, “내가 누구를 의지하는가”를 고백하는 신앙의 선언입니다. 주여 삼창은 바로 이 고백을 공동체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인 것입니다.
특히 성경에서 반복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강조와 결단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아멘 아멘) 말씀하실 때, 그것은 말의 힘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청중의 마음을 집중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주여”를 반복해 부르는 행위는 하나님을 설득하기 위한 주문이 아니라, 흩어진 우리의 마음을 한 방향으로 모으는 영적 훈련입니다.
예배의 현장에서 주여 삼창은 놀라운 역할을 합니다. 개인 기도의 언어에서 공동체 기도의 언어로 넘어가는 전환 버튼과 같습니다. 각자의 생각, 염려, 피로가 교차하던 공간이 “주여!”라는 동일한 부름을 통해 하나의 기도 자리로 재편됩니다. 이것은 소리가 커서가 아니라, 부름의 대상이 분명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물론 오해도 있습니다. 주여 삼창이 마치 더 큰 응답을 끌어내는 방법처럼 오해될 때,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미신이 됩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이 분명히 아셔야 될 것은 하나님은 부르짖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주여 삼창의 능력은 형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존과 항복의 태도에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주여 삼창을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러기에 “주여!”라는 외침은 이렇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주님, 지금 이 시간의 주도권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 내 말보다 주님의 뜻을 구합니다.”
그럴 때 주여 삼창은 내 삶의 방향을 다시 하나님께로 맞추는 강력하고도 의미 있는 기도가 됩니다. 목회자는 이 짧은 외침 속에 담긴 깊은 복음을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온전히 하나님께 마음을 올려 드릴 수 있는 방향이 맞춰진 공동체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주여 삼창의 가장 큰 유익은 기도의 문턱을 낮춘다는 점입니다. 기도에 익숙하지 않은 성도, 말로 기도하는 것이 어려운 성도도 “주여!”라는 한 단어로 기도의 흐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여 삼창이 누구만의 기도 방식이 아니라, 모든 성도를 초대하는 공동체적 배려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주여 삼창은 기도의 ‘속도’를 바꾸게 합니다. 평소 생각이 많고 마음이 분주한 성도들도 이 짧은 외침을 통해 숨을 고르고, 분주한 마음을 멈추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영적인 집중입니다. 그래서 주여 삼창 이후의 기도는 종종 더 단순해지고, 더 정직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여 삼창은 하나님을 깨우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를 깨우는 기도 소리입니다. 이 부르짖는 외침이 예배당을 넘어 내 삶의 자리에서도 연결될 때, 성도는 가정과 직장, 세상 속에서도 이렇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여, 오늘도 주님을 의지합니다.”
하늘 복 받으세요 담임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