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도 먼저 뛰어들지 않을까?
남극의 바닷가에는 늘 긴장되는 침묵의 순간이 있습니다. 수십 마리의 펭귄들이 얼음 가장자리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봅니다. 그들은 배가 고프지만, 아무도 쉽게 뛰어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닷속에는 물개와 범고래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서로 밀치지도 않습니다. 서로 등을 떠밀지도 않습니다. 그저 기다립니다. “누가 먼저 뛰어들까?” 그때, 단 한 마리의 펭귄이 얼음 끝에서 바다로 뛰어듭니다. 그 펭귄이 바로 퍼스트 펭귄입니다. 그 한 번의 도약으로 바다의 위험이 확인되고, 그제서야 나머지 펭귄들이 뒤따라 뛰어들며 무리는 생존의 길로 나아갑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펭귄은 참 용감하다.” 하지만 사실 퍼스트 펭귄은 용감해서 뛰어든 것이 아닙니다. 더 기다리면 모두가 굶어 죽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믿음처럼 보이는 결단을 먼저 내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이 펭귄들과 닮아 있지 않습니까?
상황이 좀 더 좋아지면 믿겠습니다. 확실해지면 헌신하겠습니다. 안전하다는 증거가 보이면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언제나 확실함 이후가 아니라, 불확실함 가운데서 시작됩니다.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퍼스트 펭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목적지를 알지 못한 채 떠났고, 베드로는 물 위가 안전하다는 증거 없이 발을 내디뎠으며, 초대교회는 보호받을 환경이 아니라 핍박 속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붙든 것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이번 새해, 누가 먼저 나에게 나오겠느냐?”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전도의 현장)
하나님, 우리는 늘 뒤에서 안전을 확인한 후 움직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앞에서 깨닫습니다. 소망은 기다림의 결과가 아니라 순종의 첫 발걸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주님, 올해도 우리는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님을 더 신뢰하기 때문에 한 걸음 내딛기 원합니다.
가정에서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공동체에서 먼저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시며 교회 안에서 먼저 믿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누군가 대신 뛰어들기를 기다리는 신앙이 아니라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퍼스트 펭귄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한 번의 결단이 모두의 길이 되었듯이 우리의 작은 순종 하나를 통해 가정이 살고, 목장이 살아나며, 우리 교회가 다시 소망을 노래하게 하옵소서.
2026년, 상황이 아니라 주님을 먼저 바라보는 주바라기 신앙으로 살기를 결단합니다. 주님, 제가 먼저 예배의 자리로, 기도의 자리로, 전도의 현장으로 뛰어들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소망이 넘치는 새해를 기도하며 하늘 복 받으세요 담임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