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나의 산 소망
로마서 15장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말씀은 성령 충만이 단순한 감정의 고조나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방식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1.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의 내주하심은 이미 주어진 은혜입니다.
그러나 내주와 충만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께서 이미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분께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삶의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갈 2:20) 상태가 실제 삶에서 드러날 때 우리는 성령 충만을 경험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언제 성령 충만을 갈망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선택지가 없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령께 묻습니다. 그러나 삶이 순조롭고, 신앙생활도 안정되어 보일 때는 어떻습니까? 오히려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7장에서 바울은 풍랑을 경고했지만, 선장은 “만사가 순조롭다”며 출항을 강행합니다. 순풍의 순간은 하나님의 음성이 가장 잘 묻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2. 다윗의 실패도 마찬가지입니다.
왕권이 안정되고 태평성대를 누리던 때,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을 갈망하지 않으면, 인간은 반드시 다른 것을 갈망하게 됩니다. 욕망은 공백을 싫어합니다. 성령으로 채워지지 않은 자리는 반드시 다른 무엇인가로 채워집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의 길은 언제나 적극적인 비움으로 이어집니다. 권리를 내려놓고,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이만하면 됐다”는 마음을 거부하는 영적 태도 말입니다. A. W. 토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속에 성령 충만보다 더 갈망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결코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이 말은 성령 충만이 어떤 위기 상황의 처방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지속적인 갈망이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3. 기도의 사람으로 알려진 존 하이드의 일화는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네가 성령 충만할 때까지 기도하겠다”는 친구의 말 앞에서 분노했지만, 결국 그는 자기 안에 성령의 절박함이 사라졌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무너짐의 자리에서 다시 성령을 갈망하는 사람이 됩니다. 무너짐은 실패가 아니라, 충만을 향한 문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옳은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선하고 옳은 일이 모두 하나님의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분별은 악을 가려내는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인식하고 따르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옳은 일을 더 많이 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충만은 곧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겠다는 선택입니다.
4. 오늘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성령을 갈망하고 있는가, 아니면 충분하다고 느끼며 스스로를 세상의 것들로 가득 채워두고 있는가? 비워짐이 사라질 때 갈망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다시 비우기 시작할 때, 성령의 숨결은 우리 삶 한가운데서 다시 불어옵니다. 그러기에 새해에 우리는 섬기는 사역과 삶 속에서 이 질문 앞에 서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 마음을 가장 많이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가지고 ‘주 예수님을 나의 산 소망’으로 삼는 새해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해, 하늘 복 받으세요 담임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