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고마운 사람 분별하기
설교본문 : 사무엘상 23장 15 ~ 18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6년 07월 26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인간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존재입니다. 한자 '人(사람 인)'이 서로 기대어 선 두 획으로 이루어졌듯, 사람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복수형을 함의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돕는 배필을 지으신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인간 존재의 부속물이 아니라 본질임을 보여줍니다.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홀로 예배하고 홀로 돌아가는 신앙은 성경이 제시하는 신앙의 표준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이 진리를 다윗의 생애 가장 낮은 지점에서 확인시켜 줍니다. "가장 고마운 사람은 누구인가?"
1. 가장 외로울 때 찾아주는 사람입니다
(삼상 23:15) 『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
다윗의 고립은 자발적 은둔이 아니라 내몰려진 고립이었습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아둘람 굴에 400명이, 이후 600명이 모였고, 인근 그일라에 블레셋이 침입하자 다윗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일라를 구원합니다. 그러나 이 의로운 행동이 그의 위치를 노출시켰습니다. 다윗이 에봇을 붙들고 물었을 때 하나님의 응답은 냉정했습니다. "그일라 사람이 너를 배신할 것이다." 자기가 생명을 걸고 살려낸 동족이 자기를 넘길 것이라는 응답 앞에서, 다윗은 더 깊은 십 광야 수풀로 들어갑니다. 600명조차 다른 곳에 피신시킨 채 홀로였습니다. 본문이 기록한 "십 광야 수풀"은 지리적 좌표이자 심리적 좌표입니다. 그 안에는 대인기피, 피해망상, 번아웃, 공황, 환청까지 —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깊은 영적 침체(deep depression) 의 총체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한 사람이 들어옵니다. (삼상 23:16)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주목할 것은 16절이 요나단의 방문 목적을 명시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요나단은 안부를 물으러 온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다윗의 믿음을 다시 하나님께 붙들어 매기 위해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 우정의 기준을 배웁니다. 나에게 정말 고마운 분은 나와 감정 코드가 맞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내 감정에 공감해 주는 친구도 고맙지만, 내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때 은혜의 사슬로 나를 매어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주는 친구가 가장 고마운 친구입니다.
2. 하나님은 요나단을 만나게 하십니다
(삼상 23:17)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여기서 결정적 단어가 나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 이 표현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이 언약을 확증하실 때 쓰시는 고유한 언어입니다. 아브라함에게(창 15:1), 이삭에게(창 26:24), 여호수아에게,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반복되는 하나님의 시그니처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전화도 문자도 없던 시대에, 600명도 알지 못하는 위치를 요나단이 찾아낸 것은 정보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나단을 보내신 것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발이었고, 요나단의 입은 하나님의 스피커였습니다. 17절의 세 가지 선언 — 두려워하지 말라, 사울의 손이 미치지 못하리라, 너는 왕이 되리라 — 은 요나단의 덕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증입니다. 이 관점의 전환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요나단만 보이면 50점이고, 요나단을 보내신 하나님까지 보이면 100점입니다.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감사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의 설교를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결과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사람의 말로 받으면 위로에 그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수용 방식이 결과를 결정합니다. 다윗에게는 요나단이 있었지만 엘리야에게는 요나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 대신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찾아오심은 사람이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습니다. 보내실 사람이 곁에 있으면 사람을 통해, 사람이 없으면 천사를 통해, 때로는 말씀 한 구절과 설교와 자연 만물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적용 : 요나단은 돌아갔지만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남아 계십니다(임마누엘).
(삼상 23:18)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본문은 요나단의 귀가로 끝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읽어야 할 보이지 않는 한 줄이 있습니다.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하지만 하나님은 그곳에 남아 계시더라." 이것이 임마누엘(God with us)의 실제입니다. 사람은 왔다가 가지만 하나님은 내 곁에 항상 남으십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깨어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고백했던 그 자리가, 오늘 다윗의 수풀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진리 위에서 다윗은 수풀 한가운데서 다시 일어나 예배하는 전천후의 예배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혹시 지금 평안한 사람은 요나단의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내가 돌아보고 찾아가야 할 다윗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통해 들려오는 격려와 위로를 통해 그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말씀이 내 속에서, 삶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 수풀에 계신 분은 남아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요나단 같은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주시고, 천사를 보내셔서 위로하시고, 여러분을 먹여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