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서로 지체가 되는 삶
설교본문 : 에베소서 4장 25절 ~ 32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5년 08월 31일
설교요약 :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는 복음의 큰 길 위에서 아주 구체적인 세 갈래의 오솔길을 함께 걷습니다. 신앙은 “안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대신 하는 것”으로 이끕니다. 벗고—입는 것, 끊고—세우는 것, 멈추고—행함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은 바로 그 실천을 우리 앞에 펼쳐 줍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다정한 경고가 흐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인격이시고,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는 보증(σφραγίζω)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삶에 나타나도록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 세 가지가 그리스도인의 서로 지체가 되는 삶입니다. 서로 지체가 되는 삶은?
1. 거짓을 벗고 참된 말을 입어야 합니다(25절).
바울은 언어부터 다룹니다. 왜일까요? 말은 공기처럼 보이지만, 관계를 세우는 구조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참된 것”은 단순한 사실(fact)이 아니라 진리(ἀλήθεια)입니다. 사실은 차갑게 사람을 베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지체를 서로 세웁니다. 바울은 “우리가 서로 지체”이기 때문에, 지체를 살리는 언어로 말하라고 합니다. 말은 언제나 한 몸을 전제로 합니다. 바울의 얘기의 배경에는 스가랴 8장이 흐릅니다.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라… 내가 거짓 맹세를 미워한다”(슥 8:16–17).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은 말의 회복으로 공동체를 재건했습니다. 성문(재판장소)에서의 정직한 증언이 도시를 지켰습니다. 오늘 교회도 같습니다. 말이 회복되면 문화가 회복되고, 문화가 회복되면 도시가 바뀝니다. 오늘부터 나의 말 앞에 세 개의 문을 세웁시다. 진실한가?(Truth), 유익한가?(Usefulness), 사랑으로 하는 말인가?(Love). 셋 중 하나라도 통과하지 못하면, 그 순간은 침묵이 사랑입니다.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지체를 살리는 은혜의 언어입니다. 이렇게 얘기해보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어?” → “무슨 도움이 필요했니?”, “또 실수했네.” → “여기까지 잘 했어. 다음엔 이렇게 해 보자.”, “그 사람, 문제야.” → “그분을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 “소문 들었어?” → “확인되지 않은 말은 멈추고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자.”
2. 분노를 벗고 품고 살지 않아야 합니다(26절).
분노를 멈추지 않고 품고 살면 죄의 불씨가 됩니다. 헬라어 원문 ‘ὀργίζεσθε(분노가 일어날 수 있음)’ 뒤에 곧바로 ‘죄를 짓지 말라’를 붙여, 분노의 방향과 지속 시간을 제한합니다. 이어지는 27절은 “마귀에게 틈(τόπος, 공간)을 주지 말라”라고 얘기합니다. 해가 지도록 품는 분노는 마귀가 뛰어드는 빈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해 지기 전, 우리는 이렇게 결단해야 합니다. 첫째, 멈춤(숨을 고르고) 성령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둘째, 맡김으로 원수 갚음을 주님께 위탁하십시오(롬 12:19). 셋째, 말씀으로 재구성합니다. 사실보다 진리로 사건을 다시 읽는 것입니다(엡 4:25). 넷째, 화해 시도를 합니다. 문자 한 줄이라도 “내가 미안했어.” 다섯째, 축복으로 마칩니다. 상대의 이름을 불러 축복하는 것입니다. 분노는 빠른 시간 안에 처리하는 것이 답입니다. 그 밤을 평안히 눕고 자게 하시는 이는 오직 주님이십니다(시 4:8). 오늘 해 지기 전, 마음의 문을 닫고 마귀의 발판을 걷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는 “왜 그랬어?” 대신 “무슨 일이 있었어?”로, 교회에서는 “맞는 말”보다 세우는 말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해가 지기 전의 작은 용기가 내 마음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며, 가정을 지키고 내 사랑하는 자녀를 지키게 합니다.
3. 도둑질을 벗고 구제를 입어야 합니다(28절).
“도둑질”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만이 아닙니다. 시간 도둑질(지각·태업), 아이디어 도둑질(표절), 신뢰 도둑질(약속 파기), 공금 도둑질, 세금 도둑질, 디지털 해적질까지 광범위합니다. 바울은 금지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헬라어로 “κλέπτων μηκέτι κλεπτέτω”(이제 더는 훔치지 말라) 다음에 곧바로 “κοπιάτω(땀 흘려 일하라) … ἵνα ἔχῃ μεταδιδόναι(나누기 위해)”라고 말합니다. 일의 목적이 더 가지기 위함이 아니라 더 나누기 위함이라는 그리스도인의 물질 관리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끊어야 할 도둑질을 인정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절도만이 아닙니다. 시간 도둑(지각·게으름), 신뢰 도둑(거짓 보고), 명예 도둑(공로 가로채기), 세금·대가 회피 등은 옛 사람의 옷입니다. 둘째, 자기 손으로 수고해야 합니다. 장인 정신으로 오늘 맡겨진 일을 기한 내에 성실히 마감하는 것입니다. 셋째, 십일조와 이웃, 선교를 위한 헌금을 물질 관리에 포함해야 합니다. 월수입의 일정 비율을 ‘주님께 드림(종자씨, 십일조 헌금)’과 ‘이웃 섬김(구제·선교)’으로 먼저 구별하시기 바랍니다. 재능도 나눔입니다. 물질만이 아니라 나의 재능과 시간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손을 새롭게 하셔서, ‘훔치지 않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쁨으로 나눔’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적용 : 사랑하는 여러분, 새 사람은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을 넘어 진리를 말하는 사람, 분노를 참는 사람을 넘어 분노를 버리고 용서하는 사람, 도둑질을 안 하는 사람을 넘어 일하여 나누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서로 지체가 되는 삶”입니다. 오늘부터 우리의 혀에 은혜의 말, 우리의 가슴에 용서의 호흡, 우리의 손에 주님을 향한 헌신과 나눔과 섬김의 길을 활짝 열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말하겠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분노를 버리겠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일하여 나누겠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