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여러분은 삼가라
설교본문 : 사도행전 20장 28 ~ 32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6년 08월 30일
설교요약 :
사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 밀레도 항구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냅니다. 예루살렘에는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바울은 오히려 그 길을 서둘렀습니다. 22절이 그 이유를 밝힙니다. "성령에 매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 사로잡힌 사명자는 환난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순종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아브라함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 하셨을 때 기한을 정해 주지 않으셨는데도, 그는 그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모리아산으로 갔습니다. 사명자는 그렇습니다.
그 바울이 밀레도에서 남긴 유언의 첫마디가 오늘 본문입니다.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주목할 것은, 이 첫마디가 구약의 유언과 완전히 겹친다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요단 앞에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남긴 유언이 이것이었습니다.
(신 4: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칠십인역(LXX)은 이를 '프로세케 세아우토'(πρόσεχε σεαυτῷ)로 옮겼고, 바울의 말은 '프로세케테 헤아우토이스(προσέχετε ἑαυτοῖς)'입니다. 완전히 같은 표현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지도자도, 신약의 가장 위대한 사도도, 떠나면서 남긴 첫마디는 똑같았습니다. "너 자신을 삼가라." 지도자의 유언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신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삼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교회를 보살피기 위해서입니다
(행 20:28) "…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삼가다'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세코는 '주의하다, 경계하다'라는 뜻이며, 여기서는 현재 명령형으로 쓰였습니다. 한 번 삼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내내 계속 삼가라는 명령입니다.
주목할 것은 바울이 "내가 여러분을 감독자로 세웠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고, 세례를 베풀었고, 장로를 택해 세웠음에도 그는 성령께서 세우셨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그리고 그 감독자(에피스코포스, 관리자·보호자)의 역할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는 일이었습니다.
"자기 피로"의 헬라어 디아 투 하이마토스 투 이디우는 "하나님 자신의 피로" 또는 "자기 소유이신 분(아들)의 피로"로 읽힙니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습니다. 교회의 가격표에는 하나님의 피가 붙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는 하나님이 피로 결제하신 자리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경계해야 합니까? 바울은 두 방향을 지목합니다.
첫째, 밖에서 오는 위협입니다.
(행 20: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사나운 이리'는 이단과 거짓 선지자입니다. 바울이 있는 동안에는 그가 직접 막았지만, 이제는 장로들이 그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둘째, 더 무서운 것은 안에서 오는 위협입니다.
(행 20: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유언의 자리에서 "여러분을 확신합니다"라는 덕담이 아니라, "여러분 중에서 나올 것을 내가 안다"고 단언한 것입니다. '어그러지다'의 헬라어 디아스트레포는 '왜곡하다'입니다. 자기 욕망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비트는 것입니다. 게다가 바울은 이 '사람들'을 복수형으로 썼습니다. 어쩌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절대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는다면서도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해 말씀을 이용하고 왜곡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을 동시에 망치는 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행 20: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은 복음만 전한 것이 아니라 밤낮 눈물로 기도하며 각 사람을 권면했습니다. '각 사람'입니다. 군중이 아니라 한 사람씩이었습니다.
(행 20: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바울은 장로들을 에베소의 유력자나 권력자에게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했습니다. 말씀에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사람만이 말씀으로 세움 받고,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권면하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잇습니다.
(행 20:33-35)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바울은 천막 제조 기술로 자비량 전도를 했고, 자기 경비뿐 아니라 동행자들의 경비까지 충당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장이 아니라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곧 3년 동안 눈으로 확인된 사실이었습니다.
2. 사명과 임마누엘의 축복 때문입니다
힘들어도 축복인 일이 많습니다. 일하는 것은 힘들지만 일하지 못하는 것은 저주입니다. 아이 기르는 것은 힘들지만 낳을 수 없는 것은 아픔입니다. 공부는 벌 같지만, 형편이 어려워 못 하던 아이에게 장학금을 주면 눈물을 흘립니다. 사명은 더욱 그렇습니다.
사명을 귀히 여기면서도 주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겸손하고 책임감 강한 분들입니다. "나는 부족해서 감당 못 합니다." 그러나 그 말에는 한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그 사명을 무슨 힘으로 감당하는지에 대한 믿음입니다. 자기 능력으로 하는 줄 알기 때문에 자격을 따지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상황에서 장로를 세운 것은 얼핏 무책임해 보입니다.
(행 20:29-30)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신학교도 없고, 성경책도 없고, 배운 기간은 3년뿐입니다. 바울도 다 알았기에 장로들과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그런데도 맡겼습니다. 믿는 것이 하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행 20: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바울은 장로들을 보고 맡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맡겼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유능한 것이 더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목회자에게도 이 위험이 있습니다. "목사님 설교 때문에 이 교회에 나왔습니다"라는 말이 전에는 기뻤지만 지금은 두렵습니다. 성도가 바라볼 분은 예수님이시고 들어야 할 음성은 예수님의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예수님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목사님 한분은 은행 대출 거절 사유가 "목회자 한 사람의 영향력에 의존한 교회"라는 판단이었음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 안식년을 떠나고, 교회를 분립하고, 담임목사직에서 내려왔습니다. "내가 빠져서 무너질 교회라면 차라리 지금 무너지는 것이 낫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영향력을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이 그 중심에 놀라운 힘을 부으셨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빌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은 다 배설물로 버리고 얻은 축복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할 힘의 근원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사명을 감당하는 자만이 누리는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적용 : 삶으로 감당하는 사명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행 20: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이 3년을 눈물로 가르친 이유는 자기 목회의 일꾼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떠난 뒤에도 그들이 예수님을 알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명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것입니다. (행 20: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특히 두 영역입니다. 첫째는 물질입니다. 교회를 통해 이익을 남기려는 마음은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이 다른 방법으로 채워 주십니다. 둘째는 사랑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봉사하는 이를 비판해서는 안됩니다. 격려와 축복 아니고는 신중해야 합니다.
반대로 "사람 말이 무서워서 봉사 안 하겠다"는 것도 어리석습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사람 말이 무서웠다는 변명이 통하겠습니까? 오히려 말도 안 되는 말을 듣고도 한결같이 충성한 것이 상급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미 장로님,안수집사님,권사님,여집사님으로 호칭되는 분들과 앞으로 그렇게 될 분들 모두는 오늘 바울의 유언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외적 공격과 내적 유혹으로부터 날마다 자신을 삼가해야 합니다.
둘째, 교인을 위해 밤낮 눈물로 기도의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주님의 말씀에 자신을 의탁하여 그 말씀이 삶으로 육신을 입는 말씀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넷째, 자기 주머니를 열어 연약한 이를 돕는 사랑의 실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자신을 호칭해 드리는 교인들 앞에서 참된 믿음의 모범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중앙의 성도님들이 사명의 축복,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림으로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인생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러기에 내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더 풍성하게 드러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