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사랑받는 자녀같이
설교본문 : 에베소서 5장 1절 ~ 9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5년 09월 07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은 단 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엡 5:1). 복음은 ‘해라’보다 ‘되라’로 먼저 다가옵니다. 우리는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정체성이 먼저이고 행함은 그 다음입니다. 그래서 본받음은 강요된 흉내가 아니라 사랑받는 자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주님은 예배당에만 머무는 신앙을 원치 않으십니다. 가정·학교·직장·도시 한복판에서, 예수님이라면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하실까(WWJD)를 묻고 그분을 닮아가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14절은 우리를 깨웁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추이시리라.” 영적 게으름에서 깨어 먼저 일어나라는 부르심입니다. 오늘 두 가지를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살리는 말과 세상을 빛으로 밝히는 것입니다.
1.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엡 5:3–4)
사도 바울은 충격적인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과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왜 ‘그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말라 할까요?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우리 인격의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혀가 향하는 곳으로 마음이 끌리고, 마음이 가득한 것으로 입이 말하게 됩니다. 죽이는 말을 연습하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살리는 말을 훈련하면 마음이 밝아집니다. 예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셨지만, 언제나 생명이 나가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일어나 걸어라.” 예수님의 말은 죄를 가볍게 하지 않았고, 절망을 미화하지도 않았지만, 절망보다 크신 하나님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먹은 자는 살아났습니다. 사랑받는 자녀로 부름받은 우리는 그분의 말투와 시선과 손길을 본받는 자가 됩니다. 살리는 말은 무엇입니까? 감사, 격려, 축복, 진실, 소망입니다. 감사는 감정을 꾸미는 미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금 여기서도 일하신다는 신앙의 해석학입니다. 격려는 “괜찮아”라는 값싼 위로가 아니라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동행을 약속하는 말입니다. 축복은 과장된 주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선포하는 고백입니다. 진실은 상대를 찌르기 위한 칼이 아니라 사랑을 담는 그릇입니다. 소망은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의 미래를 오늘 당겨 사는 태도입니다. 반대로 ‘죽은 말’은 영혼을 메마르게 합니다. 음담패설과 비하, 냉소와 비교, 비꼼과 과장은 웃음을 남기지만 생명을 앗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입술에 경계선을 그어야 합니다. 단톡방의 조롱을 넘기지 않기, 술자리의 추잡한 유머에 동조하지 않기,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전파하지 않기, 때로는 정중하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 표현은 불편합니다. 다른 말로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공동체의 건강함을 지키려면 누군가 첫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빛의 사람은 그 첫 사람이 되기로 결단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살리는 말은 결심만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루를 열며 감사한 것을 적고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오. “오늘 숨 쉬게 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직장을 허락해주시고 좋은 동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먼저 섬길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하루에 한번 이상, 의도적으로 감사 메시지를 보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 덕분에 오늘 일이 잘 풀렸습니다.” “어제 저에게 해주신 말이 큰 힘이 됐습니다.” 감사는 상대를 살릴 뿐 아니라 나를 살립니다. 감사의 언어는 내 영혼의 산소포화도를 높여주기에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리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을 힘써야 합니다.
2. 세상을 빛으로 밝힙니다 (엡 5:7–9, 14)
빛은 본성상 숨지 않습니다. 가리면 새어 나오고, 가두면 답답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예배당 안에만 두지 않으시고 세상 한복판으로 보내십니다. 함께 살되,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는 것, 이것이 ‘그들과 함께 하지 말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도피가 아니라 구별, 배타가 아니라 거룩, 도전은 하되 사람은 품는 태도입니다. 빛의 열매는 세 단어로 요약됩니다. 착함·의로움·진실함입니다. 착함은 성격이 좋은 것이 아니라 먼저 하는 선택입니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사과하고, 먼저 책임지고, 먼저 자리를 내어주는 것. 이 ‘먼저’에는 가끔씩 오해와 손해가 따라붙습니다. 그러나 ‘먼저’는 하나님 나라의 시간표입니다. 겨자씨가 먼저 떨어져 죽을 때 숲이 자라고, 한 알의 밀알이 먼저 썩을 때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출퇴근길에 만나게 되는 분들께 “수고 많으십니다”라고 먼저 말해 보십시오. 관공서·병원·학교에서 창구 직원에게 “덕분에 잘 처리했습니다”라고 먼저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실 공용 비품을 먼저 채우고, 휴게실을 먼저 정리하고, 쓰레기 하나를 먼저 주워 보십시오. 작은 착함이 공간의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가 존중의 문화를 만듭니다. 의로움은 정직의 꾸준함입니다. 숫자를 다룰 때, 보고서를 쓸 때, 견적을 낼 때 작은 거짓을 거절하는 습관입니다. “모릅니다/제가 실수했습니다”라고 말할 용기, 내 편에 관대하고 남의 편에 가혹한 마음을 회개하고 공정하려 애쓰는 태도가 의로움입니다. 의로움은 주변의 불의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때로는 외롭습니다. 그러나 장기전에서 항상 이기는 편은 의로움입니다. 하나님이 의로운 길에 기쁨을, 의로운 사람에게 신뢰를 주십니다. 신뢰는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의 정직과 틈새에서의 절제가 쌓여 만들어집니다. 진실함은 말의 윤리이자 삶의 태도입니다. 소문보다 사실, 선동보다 증거, 편의보다 공정을 선택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을 퍼 나르지 않고, 억측을 경계합니다. 누군가를 향한 비난이 돌 때 “그분의 말을 직접 들어 보셨나요?”라고 조용히 묻습니다. 진실함은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 불편을 견디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지킵니다. 진실은 속도가 느리지만 힘이 있습니다. 거짓은 빠르지만 내구성이 없습니다. 빛으로 산다는 것은 루틴을 만드는 일입니다. 루틴은 열정을 지속 가능하게 합니다. 하루의 시작을 위드바이블 성경 읽기, 성경필사 쓰기로 열고, 가족·동료 한 사람에게 감사 문자를 보내고, 오늘 내가 유혹 받는 지점(돈·시간·시선·언어)을 미리 적어 경계하고, 하루 한 번은 의도적으로 배려를 실천하고, 사실 확인 전에 남 말, 뒷 말을 옮기는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빛으로 살아가는 좋은 습관이 등불의 기름이 되어줍니다. 기름이 마르면 등불이 꺼지고, 기름이 채워지면 긴 밤도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적용 :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선택합니다. 우리는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살리는 말을 하겠습니다. 둘째, 세상을 빛으로 밝히겠습니다. 이 두 선택이 우리의 언어·표정·결정을 바꾸고, 우리의 가정·학교·직장을 바꿀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추이시리라.” 이제 예배를 마치고 빛을 들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잊지 말 것은, 우리가 빛을 내는 주체가 아니라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비추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추이시리라.(엡 5:14)” 우리는 등잔대일 뿐입니다. 등잔대의 역할은 기름을 채우고 심지를 정돈하여, 빛이 방해받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내 마음을 청결케 하고, 감사와 순종으로 심지를 올려 방해물을 치우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의 빛이 우리의 얼굴·말·결정·관계에서 드러납니다. 빛의 사람은 먼저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어둠 가운데 먼저 일어서는 사람.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조용히 “저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모두가 “그런가요?”라고 말할 때 “우리는 다르게 해봅시다”라고 정중하게 제안하는 사람입니다. 이 ‘먼저’에는 외로움이 따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리를 오래 비워두지 않으십니다. 성령께서 보이지 않는 위로하심으로 도와주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반드시 채우십니다. 결국 빛은 빛을 불러서, 혼자였던 외로운 내 삶의 자리에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동역이 점점 이루어지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