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힘이 필요할 때
설교본문 : 사무엘상 21장 8절 ~ 11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4년 06월 02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사무엘상 21장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니는 이야기입니다. 본장에는 두가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먼저는 다윗이 놉땅으로 가서 그곳의 제사장인 아히멜렉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자신이 사울을 피해 도망중이다"라고 솔직하게 알리는 것이 아닌 "왕의 비밀명령을 수행하고 있다"고 알리며 아히멜렉에게 협조를 구합니다. 아히멜렉은 평소의 다윗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았기 때문에 그의 말에 의구심을 가지지 않고 진설병과 골리앗의 칼을 내주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아히멜렉의 호의는 그의 가족들과 놉 땅이 멸절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은 아히멜렉의 잘못이 아닌 예배에 실패해서 그러한 원인을 제공한 다윗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다윗이 먼저 하나님께 여쭙는다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아히멜렉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려서 아히멜렉이 방안을 제공해줬더라면 아히멜렉도 살 수 있는 길이 열렸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오늘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예배가 아닌 칼을 요청하고, 제사장은 다윗에게 빵과 칼을 제공합니다.
다윗과 같이 내 인생에 힘(칼)이 필요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예배에 승리해야 합니다.
오늘 다윗이 사울의 칼을 피해서 도망 다니다가 사울 왕이 지명수배를 내렸으니 다윗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두려웠겠습니까? 그래서 두려운 마음이 얼마나 강하게 드는지 그가 급기야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망간 곳이 앞의 1절에 보면 놉 땅에 있는 아히멜렉 제사장을 찾아갑니다. 다윗이 힘이 필요할 때 놉 땅에 있는 아히멜렉 제사장을 찾아갔고 아히멜렉 제사장은 때마침 제단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문제를 만났을 때 제대로 된 장소(right place)에 제대로 된 사람(right person)에게 그리고 제대로 된 날(right day)에 그가 그곳에 도착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에 찾아갔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아히멜렉 앞에 섰고 또 그날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안식일이었다면 그가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가도 그곳에선 예배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배의 장소로 나왔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주는 아히멜렉도 있었기 때문에 거기다가 안식일에 당도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예배드렸으면 두려움이 해결되었을 테고 그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삶의 특징이 복음적인 예배자라서 들판에서도 예배했고 골짜기에서도 예배했고 도망가면서도 예배했고 바위틈에 있어도 예배했고 광야에서도 동굴 속에서도 예배했는데 오히려 오늘 본문에 가장 예배하기 좋은 장소로 성령께서 이끌어주셨고 제단 앞으로 이끌어주셨고 가장 예배하기 좋은 제사장 앞에 이끌었고 가장 예배하기 좋은 그 안식일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예배했던 다윗 답지않게 가장 좋은 환경에서 예배를 못 드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예배에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예배에 솔직해야 합니다.
오늘 이 다윗의 모습에서 거짓말과 다윗이 제사장이 먹을 진설병에 손대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제사장에게 ‘무기가 있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제단인 예배당에서 무기를 제사장에게 달라고 얘기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에서는 내가 차고 있었던 칼도 벗어놓고 들어와야 되는 곳인데 제단에서 예배해야 되는 다윗이 예배에 실패하고 무기를 찾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예배드려야 하는 때에 예배 드리지 못하면 이 두려움이 우리를 우리답지 않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것을 범하고 속이고 붙잡지 말아야 할 것을 붙잡게 만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예배에 실패하게 되면 예배드려야 하는 금과 같은 시간에 엉뚱한 일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윗이 지금 예배하기 가장 좋은 장소에 예배하기 가장 좋은 사람 앞에서 예배하기 가장 좋은 안식일에 무기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아히멜렉 제사장이 ‘다윗이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쌓여 에봇 뒤에 있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 말을 들었으면 다윗이 뭐라고 해야 됩니까? “아니, 내가 잡을 무기가 없어서 골리앗의 칼을 내가 잡겠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던 골리앗의 칼을 내가 가지고 어디다 쓰겠습니까? 내가 잡을 칼이 있고 안 잡을 칼이 있지 골리앗의 칼을 내가 어떻게 잡는다 말입니까?” 이래야 정상인데 다윗이 이르되 “그와 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라고 얘기합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가장 안타까운 흑역사의 순간입니다. 자기가 죽였던 골리앗의 칼을 보고 너무 반가워하면서 “그 같은 것이 또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만큼 좋은 무기가 어딨겠습니까? 내가 그거 들고 다니면 무서울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내게 주소서”라고 예배해야 하는 시간에 잡지 말아야 할 무기를 붙잡고 좋아하고 있는 다윗답지 않은 예배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도는 정성과 진심을 다해 예배에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용 : 안타깝게도 다윗은 예배하기 가장 완벽한 제단에 나와서 가장 완벽한 제사장 앞에서 가장 완벽한 시간인 안식일에 오히려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고 무기 한 자루 잡고 기분 좋아져서 “이것만 한 것이 내게 어딨습니까?” 하고 그곳을 기쁘게 떠나는 것이 골리앗의 칼을 든 다윗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들고 나아가면 이제 무서울 것이 없었을까요? 골리앗의 칼을 들었으니 이제는 사울의 칼보다 골리앗의 칼이 더 기니까 사울을 만나도 무섭지 않고 골리앗 같은 블레셋의 사람을 만나도 무섭지 않았겠습니까? 골리앗의 칼을 가졌으니 이 세상에 최고의 무기를 가졌다고 기고만장했을 것 같은 다윗에게 희한하게 10절부터 보면은 ‘그가 사울을 두려워하여’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12절에 가면 ‘그가 블레셋의 왕 아기스 왕을 심히 두려워하여’라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의 칼을 손에 쥐는 순간부터 이전에 다윗에게 오히려 등장하지 않던 '두려워하였다'는 단어가 계속 등장합니다. ‘그가 두려워하더라 두려워하더라 두려워하더라’ 하나님을 잡아야 하는 사람이 칼을 들기 시작하면 평안히 오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두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가는 데마다 더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배 때 진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이 다윗이 알게 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 아기스 왕 앞에 구사일생으로 터덜터덜 살아서 나오는 자기 모습이 비참하고 자기 손에 들려 있는 골리앗의 칼을 좋아했던 자기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면서 이 칼이 단 1초도 블레셋의 땅에서 날 구원해 줄 수 없었다는 것을 안 다음에 나를 구원하시는 분은 이 칼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시편 18편).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으면 하나님이 나의 무기가 되어 주시고 내가 예배하는 중에 하나님이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이 내 힘으로 도무지 할 수 없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예배 시간에도 자신의 근심을 다 하나님 앞에 맡기는 사람들이 근심으로 들어왔다가 예배를 통해 평안을 얻고 기쁨을 얻고 만족을 얻어 세상으로 힘 있게 나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힘(칼)이 아닌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는 사랑하는 우리 중앙가족들이 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