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부활절,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설교본문 : 베드로전서 1장 1절 ~ 2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0년 04월 12일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
설교요약 :
기독교 최대의 절기인 부활절기를 성경적으로 잘 지킴으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리고 성경대로 축복 받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부활절을 맞아 우리 온 교회가 오직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부활절에 우리가 구주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고, 부활 소망으로 위기의 때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성찰하기 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무덤 문을 여시고 다시 살아나셨듯이 우리가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부활의 은혜와 기쁨과 감격을 점점 더 많이 누리시는 삶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자기정체성에 대한 이론들 가운데 케나다의 심리학자 제임사 마샤(James Marcia)는, ‘그 정체성에 자신이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가?,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가?’하는 것과, 또는 ‘삶의 고민, 삶의 위기’를 겪음을 통해 정체성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가 크게 네 가지로 자기정체성을 말하는데, 산만한 정체성, 탐색 중인 정체성, 주어진 정체성, 그리고 확립된 정체성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산만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10%, 탐색적인 정체성은 2%입니다. 확립된 정체성은 12%이고, 놀랍게도 74%가 주어진 정체성을 가지고 산다고 합니다. 실제로 한국 사람들은 주어진 정체성에 굉장히 열심히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보여주시는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들이 가정으로 다 흩어져 있습니다. 오늘 성경, 베드로전서의 배경도 소아시아에 흩어진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탁월성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인 ‘하나님의 택하심’을 신학적으로 잘 설명해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심에 대해 세 가지로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두 번째는 성령의 거룩케 하심으로, 세번째는 순종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해서’ 입니다. ‘택하심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짧지만 놀라운 깊이가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보여주시는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들이 가정으로 다 흩어져 있습니다. 오늘 성경, 베드로전서의 배경도 소아시아에 흩어진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탁월성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인 ‘하나님의 택하심’을 신학적으로 잘 설명해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심에 대해 세 가지로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두 번째는 성령의 거룩케 하심으로, 세번째는 순종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해서’ 입니다. ‘택하심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짧지만 놀라운 깊이가 있는 말씀입니다.
1. 택하심의 근원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입니다.
택하심의 근원은 ‘하나님의 미리아심’입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잘 표현된 곳이 시편 139:13-18절까지인데, 이 본문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139:13절에, ‘뜨개질 하다’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또 15절에는 천을 직조하듯이, 뜨개질로 씨줄 날줄로 천을 짜듯이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나를 이렇게 만드셨다는 겁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하는 말이 ‘신묘막측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놀랍게, 경외스럽게’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원더풀 하게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 모습이 형성되기도 전에,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내 인생을 알고 계셨고, 나를 하나님의 마음에 두셨다는 말씀입니다.
택하심의 근원은 ‘하나님의 미리아심’입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잘 표현된 곳이 시편 139:13-18절까지인데, 이 본문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139:13절에, ‘뜨개질 하다’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또 15절에는 천을 직조하듯이, 뜨개질로 씨줄 날줄로 천을 짜듯이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나를 이렇게 만드셨다는 겁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하는 말이 ‘신묘막측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놀랍게, 경외스럽게’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원더풀 하게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 모습이 형성되기도 전에,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내 인생을 알고 계셨고, 나를 하나님의 마음에 두셨다는 말씀입니다.
2. 택하심의 방법은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의 방법을 ‘성령이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를 통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택하신 방법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거룩하게 하시는 모든 일에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여기서는 성령님의 회심하게 하시는 역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우리를 회심시키셨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회심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진리에 기초에서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것을 통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성령님께서 행하신 너무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의 방법을 ‘성령이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를 통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택하신 방법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거룩하게 하시는 모든 일에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여기서는 성령님의 회심하게 하시는 역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우리를 회심시키셨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회심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진리에 기초에서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것을 통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성령님께서 행하신 너무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3. 택하심의 목적은 ‘순종함과 예수의 피뿌림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피 뿌림과 그리스도의 순종함’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그리스도께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께 순종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세상과 자신에게 다 순종하고 살아갑니다. 세상에 무릎 꿇고 살아갑니다. 자기의 욕망에 무릎을 꿇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세상적인 욕망을 우리는 순종함과 예수님의 피를 의지함으로 영적인 갈망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순종을 위함이고, 참된 자유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피 뿌림을 받았다는 것은 언약이 우리에게 완전히 체결되었다는 약속입니다. 단순히 죄사함을 받았다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변개할 수 없는 언약이 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실 때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참된 자유에 이를 뿐만 아니라 변할 수 없는 관계성 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완벽한 관계를 이루기 위해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피 뿌림과 그리스도의 순종함’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그리스도께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께 순종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세상과 자신에게 다 순종하고 살아갑니다. 세상에 무릎 꿇고 살아갑니다. 자기의 욕망에 무릎을 꿇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세상적인 욕망을 우리는 순종함과 예수님의 피를 의지함으로 영적인 갈망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순종을 위함이고, 참된 자유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피 뿌림을 받았다는 것은 언약이 우리에게 완전히 체결되었다는 약속입니다. 단순히 죄사함을 받았다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변개할 수 없는 언약이 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실 때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참된 자유에 이를 뿐만 아니라 변할 수 없는 관계성 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완벽한 관계를 이루기 위해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적용 : 우리가 지난 21일 동안 ‘위기의 때에 드리는 사순절 특새’로 하나님 앞에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 비전을 함께 품게 하시고, 온 교회가 예배자 기도자 전도자로 나아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평신도 지도자였던 ‘느헤미야'의 모습에서 이스라엘의 굴곡진 역사, 안팎의 어려움을 극복한 성벽재건과 영적 회복, 그리고 부흥은 한 번 은혜 받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함께 보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아무 소망이 없고, 다시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그런 상태에 빠져버린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헌신했습니다. 저는 이 느헤미야를 보면서 우리 민족이 떠오릅니다. 우리 민족이 얼마나 암울했습니까? 우리나라도 거의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침략 당해서 우리의 주권을 완전히 강탈 당한 다음에 나라가 다시 회복될 거라고 처음에는 생각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권이 회복될 거라고 거의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우리나라는 말도 빼앗기고 이름도 빼앗깁니다. 젊은 여성들이 성노예로 끌려가고, 곳곳에 노역으로 끌려가서 이름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치 이스라엘이 별 볼일 없는 성벽 하나 세우면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꾼 느헤미야처럼 우리나라도 특히 일제강점기 때, 느헤미야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헌신하였기에 틀림없이 오늘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다 무너진 나라에서 임시정부를 세워서 다시 나라를 회복할 꿈을 꾸었다는 것은 정말 신기하고 대단한 일입니다(예. 손정도 목사 등).
오늘 우리가 이렇게 부활절 감사예배로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우리에게 준 정체성, 주어진 정체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확립된 정체성으로 우리의 왕이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도 사도 베드로가 느꼈던 감격을 느끼며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찬송할찌로다!” 선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이 놀라우신 은혜에 감사함으로, 더욱 마음을 드리고, 더욱 정성을 드리고, 더욱 시간을 내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정신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느헤미야처럼, 그리고 밑바닥에서 묵묵히 걸레처럼 이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손정도 목사님처럼, 위기의 때에 오직 ‘부활 소망’을 결단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부활절 감사예배로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우리에게 준 정체성, 주어진 정체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확립된 정체성으로 우리의 왕이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도 사도 베드로가 느꼈던 감격을 느끼며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찬송할찌로다!” 선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이 놀라우신 은혜에 감사함으로, 더욱 마음을 드리고, 더욱 정성을 드리고, 더욱 시간을 내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정신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느헤미야처럼, 그리고 밑바닥에서 묵묵히 걸레처럼 이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손정도 목사님처럼, 위기의 때에 오직 ‘부활 소망’을 결단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