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복음적인 예배(feat. 아벨)
설교본문 : 창세기 4장 1절 ~ 7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4년 04월 14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온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입니다. 그런데 둘 다 예물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 한 사람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다른 사람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그냥 눈으로 봐서는 가인의 예배와 아벨의 예배에 차이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보아서는 똑같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같으면 둘 다의 예배를 받았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예배를 꼼꼼히 살펴서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우리 눈에는 차이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 눈에는 어느 예배가 진짜이고 어느 예배가 가짜인지가 정확하게 보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겉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에 이 가인과 아벨의 예배의 차이를 분명히 아시더라는 겁니다. 농사꾼이었던 가인은 농사에서 난 소산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물 들고 나와 예배를 드린 것이고, 양을 치던 양치기였던 아벨은 자기의 양을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던 예물의 차이 외에는 차이를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예배는 기쁘게 받으신 반면에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아니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아벨의 예배는 어떠한 예배였습니까?
1. 정성이 있었습니다(3~4절).
무슨 차이가 있었는가? 제물의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제물을 드린 정성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종류든지 그것은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예물이 어떤 정성을 담고 있느냐를 따라서 하나님은 받으시기도 하고 받지 않으시기도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육식주의자라서 양은 좋아하시고 채식주의자는 아니라서 곡식은 싫어하신 그런 종류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종류의 예물이든지 곡식이든지 양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예배자가 들고 온 예물을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더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그 예물이 어떤 예물이고 어떤 정성이 담겨있는지 하나님이 굉장히 꼼꼼히 따지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봐서는 이 곡식과 이 양이 어떤 질적인 차이와 정성의 차이가 있는지 한국말로 봐서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영어 성경과 원어 성경을 볼 것 같으면 분명한 차이가 나오는데 먼저 가인이 가지고 나온 예물에 대해서 영어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Cain brought some of the fruits of the soil’ 이렇게 나옵니다. ‘가인이 땅에서 난 많은 열매들 중에 얼마를 들고 왔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많은 열매들 중에서 얼마를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별, 특별, 성별이 없는 것입니다(아무거나). 많이 있는 것 중에 그냥 한 줌 집어서 예배 드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벨이 가지고 나온 양에 대해서는 성경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Abel brought fat portions from some of the firstborn of his flock’ 이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양들 중에서 가장 첫 번째 난 새끼 중에 가장 살찐 부위를 가지고 나왔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표현이 뭡니까? 가장 귀한 것 중에 가장 귀한 부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들고 나왔다는 겁니다. 영어 성경으로 볼 것 같으면 이 두 가지의 예물에 정성에 차이가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가장 귀한 첫 번째 새끼 중에 가장 살찐 귀한 부분을 하나님 앞에 드렸다는 것입니다. 곡식을 가지고 나왔냐 양을 가지고 나왔냐가 아니라 어떤 곡식이었고 어떤 양이었냐를 하나님은 보고 계시고 그것을 받으셨다는 겁니다. 아벨은 가장 귀한 것으로 하나님 앞에 들고 와서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아벨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
2. 믿음이 있었습니다(히 11:4, 6절).
그렇다면 믿음으로 예물을 드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을 알아야 우리도 그렇게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많이 있는 것 중에 일부를 드린 가인의 믿음과 가장 자기에게 소중한 것을 드린 아벨의 믿음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냐면 아벨에게 있어서는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것을 하나님 앞에 가장 귀한 것을 드리면, 어떤 면에서 이게 없어지면 내 재산에 큰 손해가 날지 몰라도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려고 할 때의 아벨 속에는 이렇게 드리지만 하나님이 반드시 채워주신다라고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기쁘게 드릴 수 있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아벨에게는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이것을 드리지만 하나님은 이것에 대한 분명한 되돌려주심이 있고 채워주심이 있다라고 하는 이 확신 가운데서 그 믿음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가인은 그런 믿음이 없어서 이거 내고 나면 손해라고 생각하니까 얼마만을 드리면서 그건 가인에게 있어서 드리라니까 드리지만 하나님이 안 채워줘도 상관없는 만큼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만에 하나라는 의심이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시면 좋지만 만에 하나 채워주시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할 정도를 더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인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의 믿음은 이것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채워주시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까지 믿음으로 드렸다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드리지만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확신 없이는 이렇게까지 드릴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림이라고 하는 것은 부담이 생길 정도로 드려야 드린 것이지. 아무런 부담이 없이 드리는 것은 제대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벨의 믿음이 바로 이런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벨의 믿음이 작은 믿음이 아닌 것은 물질은 보이는 것이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입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분을 위해서 보이는 물질을 드린다는 것은 굉장한 믿음이 동반되어져야 됩니다. 그리고 굉장히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가장 귀한 것을 드리고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이고 보상해 주실 것을 믿는 것은 적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아벨의 믿음은 큰 믿음입니다.
3. 예배자의 삶이 있었습니다(4, 7절).
마지막으로, 가인의 예배를 하나님 받지 않고 아벨의 예배를 받으신 이유는 아벨이 예배자의 삶을 잘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의 예배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았다”고 이렇게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의 제물만 받은 것이 아니라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고,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면서 5절에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았다’라고 이렇게 나옵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누구냐를 보지 않고 내 마음에 드는 예물을 누가 가져왔냐 아니냐 하는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가지고 왔느냐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물이 아니라 예배를 받으실 때 아벨을 받으시고 그 예물도 받으시는 것이고, 가인을 받지 않고 그 예물도 받지 않으시는 겁니다. 이것은 가인이 어떠한 삶을 살았고 아벨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것을 설명해 주는 구절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실 때는 이곳에 와서 우리가 어떤 예배를 한 시간 드리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삶을 살면서 왔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곳에서 드리는 예배가 진짜 예배가 아니라 예배드리고 나가서 한 주간을 살아야 되는 삶의 현장이 예배의 현장이고, 삶으로 드리는 예배이고, 그곳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서 다음 주 우리의 예배를 아벨의 예배로 받으시느냐 가인의 예배로 안받으시느냐가 결정되어진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와서 드리는 예배만큼 중요한 것이 삶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예배당 안에서는 틀림없는 아벨인데 밖에서 보면 영락없이 가인으로 살아가는 ‘한 가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와 교회 밖에서의 얼굴이 같아야 합니다. 두 얼굴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의 예배와 교회 밖의 삶의 예배가 일치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적용 : 예배는 기분이 안좋을 때도 드려야 합니다. 상황이 안좋을 때, 예배의 장소가 어떤 곳이든지 공동체의 예배를 사모함으로 내 삶 속에서 예배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 아벨의 예배를 세 가지를 요약하면 ①아벨은 가장 귀한 것이 생겼을 때 하나님을 기억했고 그것을 위해 가장 귀한 것을 많은 제물들 중에 관심을 가지고 구별해 두었다가 예배에서 하나님 앞에 가장 귀한 것을 드렸고 ②그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채우신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으로 믿었고 자기를 찾는 이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던 그 믿음으로 그 예물을 하나님 앞에 예배와 함께 드렸고 ③아벨은 그의 예물뿐이 아니라 삶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아벨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아벨과 같은 복음적인 예배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예배에 승리하는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