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종려주일의 복음
설교본문 : 마태복음 21장 1절 ~ 11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4년 03월 24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종려주일과 부활절은 우리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절기로, 각각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종려주일은 부활절 전 주일에 해당하며, 이 날은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합니다. 이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다는 사건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날입니다. 부활절은 종려주일로부터 일주일 후 일요일(주일)에 있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이러한 종려주일은 고난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날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고난주간은 종려주일 다음 날부터 시작하여 부활절로 마무리됩니다. 이 기간 동안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을 기억하며,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고 최선을 다하여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예수님은 겸손과 평화의 왕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진정한 왕은 하나님 한 분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라고 하는 자리는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주신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왕의 자리는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왕은 겸손한 것이 미덕입니다. 그래서 왕이 등극할 때에는 폼 나는 백마를 타고 등극을 하지 않고 아주 작은 나귀 새끼를 타고 왕의 대관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는데 이 나귀라고 하는 것은 멍에를 메는 짐승입니다. 하나님이 왕으로 맡겨 준 사명을 충성스럽게 잘 수행한다는 그러한 자세로 나귀를 탔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귀를 탄다는 말은 겸손하다는 뜻이고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겠다는 왕의 선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가지고 오라. 그 나귀를 타고 입성하겠다”고 하는 말은 바로 “내가 이스라엘의 왕이다”라는 이런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선지자 스가랴가 몇 백년 전에 이렇게 예언을 했습니다. ‘진정한 메시아가 오실 텐데 메시야가 오시면 예루살렘에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실 것이다(스가랴 9장 9절)’. 이 예언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이런 모습으로 올 거다 했는데, 예수님이 이 모습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진정한 왕이며 예언되었던 참된 메시야, 구원자이시다’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많은 능력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결정적으로 부추긴 사건이 5000명을 먹이신 사건입니다(오병이어). 이 땅에서의 먹고 사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립니다(나사로). 감히 누가 예수님께 대항하겠습니까? ‘저런 분이 정말 우리의 왕만 되어 준다면 정말 잘 따를 각오가 되어 있는데’라는 마음들이 예수님의 제자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2. 무리가 아닌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리들이 원하는 반응에는 호응해주지 않으십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다 떠나가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백성들의 함성이나 기대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사명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씩 계속 걸어갑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정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로마를 이기고 먹고 사는 문제, 성공과 실패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을 온 인류를 위해 예수님은 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로마의 힘이 강력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로마의 힘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힘은 정치권력도 아니고 돈의 권력도 아닙니다. 바로 죽음의 권력입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는 우리 모두를 인생 마지막까지 강력하게 지배합니다. 로마의 권세보다 예수님이 보실 때는 죄와 죽음의 권세가 더 센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센 것이 ‘하나님의 용서와 생명과 부활의 역사’입니다. 진정 백성을 구원하는 길은 복음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받는 것 외에는 다른 믿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정치적 메시야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제물로 죽으신 것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쁨이고 평화이고 위로이고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는 오직 유일한 길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십자가가 나를 위한 용서의 십자가이며 내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면 화려하지 않아도 행복하고 가난해도 행복하고 죽음 앞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 :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고백하고 그분을 나의 왕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 이것을 받아들이는 믿음 외에는 진정한 자유도 없고 죄를 이길 능력도 없고 사망을 극복할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어야만 다른 모든 것들이 비로소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참된 평화, 참된 기쁨과 참된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우리가 걸어갈 길이기에 주님은 종려주일 이후 흔들림 없이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주간에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붙잡아야 할 예수님이 행하신 복음입니다. 나의 참된 왕이신 예수님께 모든 찬송과 영광과 경배를 올려 드립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