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역전 인생을 만드는 복음
설교본문 : 로마서 9장 8절 ~ 16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4년 01월 21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우리가 개인적으로 전도를 하다보면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믿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때에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갖게 되십니까?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이 생깁니다. 특별히 그 상대가 믿을 만한 충족한 조건을 갖춘 분인데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이 안타까움을 한층 더 더해집니다. 예를 들어서 대대로 예수를 믿는 크리스챤 전통을 가지고 있는 분이거나,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가 다 크리스챤이시고, 미션 스쿨 출신이시고, 사회적인 지위도 퍽 괜찮고 성경도 알고 찬송도 알고 있는데도 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들을 볼 때에 이 안타까움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가 당시에 자기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았을 때 바로 그런 안타까운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9장 4-5절에서 바울사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종교적인 특권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바울사도가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이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복음으로 살아낼 때 나타나는 역전은?
1. 은혜의 역전이 일어납니다.
① 먼저 바울은 이스마엘과 이삭을 예로 들면서 하나님의 자녀는 육신의 자손이 아니라 약속의 자손이 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② 또 야곱과 에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으로 된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③ 세 번째로 하나님의 자녀는 행위가 아니라 긍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태도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정말 믿는가? 안 믿는가? 하는 오직 이것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의 대를 이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자랑할 것은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살아낼 때 이렇게 은혜의 역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2. 그릇의 역전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진노의 그릇으로 쓰고 믿는 이방인은 긍휼의 그릇으로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시고 너희는 진흙이라는 이 바울의 얘기에는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① 첫째는 하나님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는 죄에 대한 책망입니다. ② 두 번째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처벌의 권리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어떤 절대 군주 왕이 있다고 하면 사법권과 모든 입법권을 다 가진 절대 왕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죄를 지어서 그 앞에 나왔다면 그의 생명은 왕의 손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왕이 그 죄를 사면해 주거나 긍휼히 여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누군가가 악을 행했지만 당장 처단하지 않고 기다려 줄 수도, 너그럽게 용서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권한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모든 인간은 다 토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과 같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하나님이 누군가는 진노의 그릇으로, 누군가는 긍휼의 그릇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살아낼 때 이렇게 그릇의 역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적용 :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보면서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들에게 여러분은 심판받아 마땅하다고 정죄하지는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바로 소돔이요, 고모라이신 줄을 모르십니까?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속에 우리의 삶이 끝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유,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주님을 섬기는 주의 백성으로 아직도 남아있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주께서 주의 공의대로 우리들을 처리하였다면 벌써 우리는 소돔이 되고 고모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이 땅에 남겨 두신 이유는 그의 끊임없는 지속적인 사랑으로 그가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용서의 교훈을 가르치실 때에 네 이웃이 네게 허물과 실수와 잘못을 범할지라도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일흔 번, 일곱 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을까요? 그것은 끝없는 용서, 무한한 용서를 가르치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속적인 용서의 밑바탕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그 조건 없는 긍휼의 풍성한 사랑이 저와 여러분을 오늘도 지키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나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확실히 영접하고 고백할 수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오늘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던 삶의 자리에서 이 복된 신앙의 고백을 통해서 내가 선택받은 자인 것을 확신하고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아 쓰임을 받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거룩한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은혜 가운데 긍휼의 그릇으로 쓰임 받아 연초부터 연말까지 하나님이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복음으로 살아내는 새해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