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영생이 주께 있사오니
설교본문 : 요한1서 3장 1절 ~ 3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3년 10월 29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성도는 우리의 화목제 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또 사랑을 표현하며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고, 사랑받은 자로서 다시 나누어 줘야할 사랑의 사명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충분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나의 가족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며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 자녀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1.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특별한 것들을 받았기 때문에 난 특별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첫 번째 특별한 것은 특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19세기 중엽에 벨기에 출신의 다미엔 신부가 캘리포니아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하와이의 몰로카이 섬으로 사역을 위해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돌봐야 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한센 병을 앓고 있던 나환자들이었습니다. 그래도 다미엔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정성과 사랑을, 젊음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지팡이가 되어주고, 눈이 먼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벽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병이 있고 자기에게는 병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다미엔 신부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병도 아니고, 잠깐 왔다가 스쳐가는 감기 같은 질병도 아닌데 “주님. 나에게도 나병을 주십시오”하며 스스로 병을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습니다. 그런데 통증이 없습니다. 바늘로 자기 살갗을 쑤셔봤는데도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그제야 다미엔 신부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외칩니다. “나도 환자가 됐다. 나도 환자가 됐다.” 그리고 자신도 몽당손이 되고, 눈이 멀어 그들과 함께 살다가 마침내 자신이 묻어 주었던 성도들 곁에 묻히게 됩니다. 로마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계셨던 것은 십자가에 박힌 대못의 힘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사랑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 사랑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던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머물러’ 계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 모두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특별한 은혜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의 과거의 죄를 씻음 받았습니다. 나의 현재의 죄도 씻음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미래의 죄도 씻음 받았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모든 죄는 다 사해졌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은혜를 진짜 경험한 사람은 어떻게 사느냐 하면 인생의 궤도를 수정합니다. 내 인생의 스타일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 버립니다. 이전처럼 살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바울 사도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바울 사도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만나 주십니다. 그가 주님의 십자가를 만났고 십자가를 통과했습니다. 그 순간 바울에게 영적인 눈이 떠지는데 그의 삶의 모든 것의 실체가 보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대단한 학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대단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고 큰 명성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늘 그것을 자랑했는데 어느 날 십자가를 통과하고 보니까 내가 자랑했던 것들, 내가 쌓아왔던 것들의 실체가 보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다 배설물로 보이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십자가 앞에서 본 것은 내가 얼마나 악한 사람인가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보았습니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 하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 땅에 나보다 더 큰 죄인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내가 큰 죄인이라고 느끼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너무 커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큰 죄인이라고 느끼니까 더 이상 죄인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오직 예수님을 위해 살기로 작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3.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천국이 어떤 곳입니까? 눈물 없는 곳, 고통 없는 곳, 오직 기쁨과 감사와 환희만 넘쳐나는 곳입니다. 우리는 장차 그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분명히 천국은 있습니다. 우린 천국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구원이 과연 그 천국 그 정도의 차원일까요? 눈물 없는 곳, 고통 없는 곳, 기쁨만 가득한 곳 그 정도의 차원의 구원을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을까요?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냐 하면 하나님의 목적은 진짜 나를 자녀로 받으셔서 성부 성자 성령의 교제 속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누릴 수 있는 그 친밀한 교제를 나도 그분과 함께 누리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정말 복음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우리에게 하나님이 베푸신 일을 천사도 흠모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천사가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저들은 어찌하여 이런 복을 받았는가! 이런 영광을 누리는가!’ 그런데 그 영광을 우리가 어떻게 받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대단한 헌신을 드려서야 아닙니다. 우리는 천사보다 헌신 못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를 사랑해주신 하나님, 그럼에도 나를 일방적으로 당신의 교제 속으로 들여보내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그 정도로 귀한 존재입니다. 내가 그 정도로 특별한 사람입니다. 내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제 속으로 장차 들어가게 되어서 주님과 한 가족으로 지내게 된다는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내가 돈이 없다고 건강이 없다고 뭐가 부족하다고 절망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교제 속으로 내가 들어가는 것과 비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 :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특별한 은혜를 받았기에 특별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랑이 정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란 없습니다. 충분한 사랑이 치료할 수 없는 병도 없고, 충분한 사랑이 열 수 없는 문도 없으며, 충분한 사랑이 건널 수 없는 해협도 없고, 충분한 사랑이 무너뜨릴 수 없는 벽도 없으며, 충분한 사랑이 뉘우치게 할 수 없는 죄도 없습니다. 근심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앞날이 얼마나 절망적으로 보이는지, 매듭이 얼마나 단단한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충분한 사랑은 이 모든 것을 녹여 버릴 것입니다. 충분히 사랑하십시오. 절대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충분히 사랑하십시오. 절대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충분히 사랑하십시오. 절대 아쉽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 자녀의 소망으로 이 세상에서 제일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