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영생이 주께 있사오니
설교본문 : 요한복음 6장 68절 ~ 69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3년 09월 17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영생(永生)은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생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영생은 인간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합니다. 영생은 인간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누린다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영생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①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② 요한복음 6장 40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③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영생이 주께 있사오니’라는 고백의 의미는?
1. 영생의 말씀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베드로는 정말 대단한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라는 고백입니다. 제자는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연구했습니다. 인도의 간디는 예수님을 위대한 교사라고 말했고 불교의 달라이라마는 예수님을 보살로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철학, 윤리, 도덕, 인문학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예수님을 연구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단지 연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일 뿐입니다. 제자는 누구입니까? 따르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연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 순종하여 주님이 가신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태어나셨습니다. 그것은 역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믿으면 영생의 말씀이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객관적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내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를 믿으면 영생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역사성을 말하고 객관적으로 말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어떻게 믿고 따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입니다. 내게서 은혜가 떨어지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던 예배, 공동체, 봉사, 믿음 안에서의 교제가 다 시시하게 느껴집니다. 주님은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쉽게 빠져도 그만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단이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영생의 말씀에서 관심을 조금만 빠지게 만들면 죄는 우리가 알아서 짓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하는 이 신앙고백으로 힘든 시기를 주님을 바라보는 영적인 안목으로 지혜롭게 잘 이겨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믿고 알아가기를 반복하겠습니다.
제자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인생을 드려야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너무나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고난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고난이 우리에게 더욱 풍성함을 안겨줍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힘듦은 우리에게 영원한 풍성함을 누리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를 탈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책을 쓴 저자는 청년 시절에 ‘나는 시인이 되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시를 쓰는데 돈이 없어서 침낭 하나를 메고 전전긍긍하다가 강변에 있는 한 컨테이너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밤이 되면 촛불 켜놓고 시를 쓰고 그렇게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비가 너무 많이 쏟아졌습니다. 굵은 빗방울이 마구 내리치니까 무서워서 밖으로 나왔는데 앞에 보니까 홍수가 범람해서 곧 있으면 이 컨테이너 박스가 휩쓸려 떠내려갈 것 같았습니다. 그때 너무나 두려워하고 있는데 그 순간 하나의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들자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 내용은 ‘낡은 창고 앞에 서서 위협하듯 불어나는 강물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는 시인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 모든 상황이 시를 쓰고 문학을 하기 위해 당연히 경험해야 하는 일들로 여겨지고 삶의 의지가 다시 솟았다...’시인으로 살기로 다짐하자 그런 상황들이 자신의 인생 가운데 시를 쓰기에는 오히려 더 좋은 환경으로 여겨지는 겁니다. ‘이러한 삶이 시인으로 살기에 너무 좋지 않은가!’하는 그 마음을 먹자 모든 주변의 어려움이 문학의 좋은 재료가 되고 모든 경험이 자기의 글을 쓰기 위해 유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제자입니다. 내가 그 소명을 품었다면 우리 인생 가운데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제자의 길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 : 오늘 주님께서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어보실 때 베드로는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 줄 믿고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먹여주시고 기적을 행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그 의미를 말씀하시자 수많은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제자만 열두 명 남았습니다. 이 땅에서 먹고 배 부르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아니라 영생의 말씀을 붙잡고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며 천국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인 것입니다. 때때로 내 인생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가 구해야 될 것은 이해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주님, 내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영생의 주로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먹고 사는 것을 쫓는 인생이 아니라 영생의 말씀을 쫓는 제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는 고백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되어 살아가는 신앙 고백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