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믿음이 믿음 되게
설교본문 : 로마서 1장 17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3년 08월 20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성경에 ‘믿음’이라는 말이 232번이나 나옵니다. 믿음이란 ‘어떤 사물에 대한 신념과 어떤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사전적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신학에서 믿음이란 인간이 절대자를 이해하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믿음은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계시에 응답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신뢰하는 것, 확신하는 것, 맡기는 것으로써 그분을 내게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분께 굴복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을 뿐 아니라 믿음으로 복도 받고, 응답도 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음을 압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길에 서서도 정작 믿음이 무엇인지 잘 모른 채 믿음생활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에 대한 지식이나 교회생활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기도를 오래, 많이 하는 것을 좋은 믿음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잘해도 믿음이 전혀 없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사역에 열심히 헌신하고, 헌금을 많이 하고, 예배 출석 잘하면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의 척도는 아닙니다. 그렇게 열성으로 교회생활을 하던 사람도 별일도 아닌 작은 시험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나의 믿음이 믿음 되는 것은?
1.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또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① 간과하심
하나님의 용서는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예수님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셔서’ 우리의 죄를 간과하시고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에덴동산 얘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반역을 저질렀습니다. 범죄 한 저들에게 나타난 처음 현상은 무엇이었습니까? 부끄러움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부끄러움은 단순히 창피하다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흔히 죄를 지어서 그 죄가 드러나면 ‘마치 발가벗겨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죄로 인한 영적인 부끄러움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죄를 간과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물과 피를 다 쏟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가죽을 벗기셨습니다. 예수의 살을 벗기셔서 그 예수의 살로 아담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 지었던 우리의 모든 죄를 가리워주시고 그리고 앞으로 지을 모든 죄를 하나님께서 다 가려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눈에는 전에 지었던 나의 죄도 지금 짓고 있는 나의 죄도 앞으로 짓게 될 나의 죄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오직 예수의 살과 피만 보이십니다. 이것이 간과하심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당신의 의를 복음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간과하심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을 얻게 된 것입니다.
② 여겨주심
이 ‘여겨주심’에 대해서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브라함의 삶입니다. 특별히 창세기 15장에 이 여겨주심이 너무나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5장의 배경을 보면, 가나안 땅에 동방의 연합군들이 쳐들어왔습니다. 또 소돔성에 쳐들어가서 많은 사람과 재물들을 탈취해서 가져가 버렸습니다. 문제는 소돔성에서 잡혀간 포로 중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목숨을 걸고 롯을 구하기 위해서 갑니다. 그리고 그 연합군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합니다. 롯과 다른 포로들 그리고 소돔에서 빼앗겼던 많은 재물들을 다 가지고 또 데리고 아브라함이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승전해서 개선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두 사람이 찾아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댁이었고 또 한 사람은 소돔왕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와서 전혀 상반된 제안을 각각 하게 됩니다. 멜기세덱 제사장은 아브라함에게 ‘이 전쟁은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소돔왕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전리품을 가져도 좋다고 말하지만, 아브라함은 멜기세댁의 말대로 하고 소돔왕의 말은 자신의 최소한의 필요만 채우고 그에게 되돌려줍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십자가에서 내 죄의 빚을 하나님이 대신 다 갚아주셨다는 것입니다. ‘내 목숨 값으로 너희의 믿음을 채웠으니 네 믿음은 이제 온전하다’ 하나님은 그렇게 아브라함의 믿음을 믿음으로 여겨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2. 내 삶이 거룩한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믿음을 더하여 주시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나의 죄를 가려주심으로써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내 부족한 믿음을 하나님 스스로 십자가에서 쪼개지심으로 하나님이 믿음답게 여겨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으로라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노력해봐야 처음부터 끝까지 겨자씨만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그 순간까지 아무리 우리가 의롭다 해도 하나님 눈에 보기에는 우리 믿음은 겨자씨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희생이 더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니 실상은 겨자씨인데 거기에 예수님의 가죽이 놓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놓이니까 산을 옮길 만한 큰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지옥 갈 백성이 천국 백성으로 옮겨질 만한 큰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지할 것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로마서 1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의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지 안다. 노력해봐야 너의 믿음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을 안다. 믿었다가, 안 믿었다가, 감사했다가, 불평했다가 하는 그런 믿음인지 나도 안다. 그런데 그 불완전한 믿음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예수의 희생이 더해지고 주님의 쪼개짐이 더해져서 너도 모르는 순간에 그 믿음이 내 앞에서 완전한 믿음이 되었단다. 네 눈에 보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믿음으로 보이겠지만, 내 눈에는 그렇지 않단다. 내 눈에는 이제 네 믿음이 완전해 보인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내 앞에 나와 기도해라. 믿음으로 살아 보아라. 나를 의지하는 그 믿음이 너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이것이 오늘 로마서 1장 17절이 우리에게 주는 복음입니다.
적용 :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면 하나님이 기도를 들을만한 사람이 될까요? 그 자격이 언제나 갖춰지겠습니까? 평생 안됩니다. 우리는 예배도 내 자격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도 내 자격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도 예수님의 공로로, 예배도 예수님의 공로로, 기도도 예수님의 공로로 주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눈에는 내가 더 없이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하나님 눈에는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 죄인에 불과한 내가, 한없이 더러운 내가 의인으로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믿음이 믿음되게 하신 그 은혜를 입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번 한주간도 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 인해 섬김(중심/희생/진실/구체적인 섬김)을 행하시는 우리 소중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