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예수의 발에 붓고
설교본문 : 요한복음 12장 2절 ~ 3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3년 08월 13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오늘 성경의 마리아는 초대교회에서 아주 유명했을 것 같습니다. 그녀에게는 누구나 알만한 별명이 있었습니다.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린 마리아!’ 그래서 나사로를 살리신 장면에서도 요한복음에서는 나사로를 예수님의 발을 씻겼던 마리아의 오빠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60년 쯤 지나서 쓰여졌는데 그래서 요한복음이 쓰여질 때는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긴 마리아’ 그러면 사람들이 많이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유명한 사건을 통해 우리가 오늘 주님과 교회를 섬길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①마르다는 손으로 섬겼습니다. 삼 남매의 이름이 다 등장합니다. 마르다가 일하는 것을 보니까 문둥병자 시몬의 집에서 벌어진 잔치였습니다. 고생하던 시몬을 예수님이 고쳐주셔서 그 집에서 잔치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 세 사람 다 잔치 집에서 나름대로 예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손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행동적인 사람입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마르다는 행동으로 섬기는 것이고 손으로 섬기는 겁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음식을 만드는 일로 예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손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도 많이 필요합니다. ②나사로는 함께 함으로 섬겼습니다. 나사로도 주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나사로는 주님 곁에서 주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잘 모르는 집에 식사를 가면 어떤 분이 고맙습니까? 잘 몰랐던 사람인데 내 곁에 와서 다른 사람 소개도 시켜주고 인사 시켜주고 식사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고맙지 않습니까? 나사로는 그렇게 주님과 함께 앉아 대화를 하면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나사로처럼 주님을 섬기는 것은 기도로 섬기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시간을 드려서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나사로처럼 주님을 섬기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주님을 섬기는 방법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마르다처럼 손으로 섬길 수 있고, 기도로 나사로처럼 섬길 수 있습니다. 주님께 아뢰고 남을 위해 기도해주는 사역으로 우리는 주님을 아름답게 다 섬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사로처럼 주님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③마리아는 아끼지 않는 희생으로 섬겼습니다. 성경에 보면 기름을 머리에 붓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귀한 손님이 오시면 머리에 기름을 조금 붓고 환영하고 귀하게 맞았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왜 발에 붓고 발을 씻겼습니까?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식을 준비한 것입니다. 발이라도 씻겨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3000만원 정도 되는 향유를 시집 가려고 준비했을 텐데 이것을 깨뜨렸습니다. 그런데 왜 다 썼을까요? 마리아가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값비싼 향유지만 아낌없이 주님을 위해 드렸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리아의 마음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향유를 아낌없이 바쳐서 주님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의 발에 아주 귀한 향유를 부었던’ 마리아의 헌신은?
1. 거룩한 낭비입니다(3절).
우리는 이 여인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헌신이 어떠한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헌신은 어떻게 보면 ‘거룩한 낭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졌던 마음들은 절약하고 가성비 있게 그 가치들을 써야 한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성비 있는 마음, 주님께 절약하는 마음은 어떻게 보면 부정한 마음인 것입니다. 단지 세속적인 마음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 부정한 절약보다는 거룩한 낭비가 헌신의 모습이라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렇게 그 가치가 쓰이는 것이 너무 아깝게 느껴집니다. 헌신도 좋은데 좀 더 좋은,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는 아쉬움들이 늘 우리에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마음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체적 고난만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고난, 배반의 아픔을 당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십자가에 대신 달려주신 우리 주님의 마음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거룩한 낭비를 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부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우리가 가룟 유다처럼, 제자들처럼, 주변의 사람들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낭비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매를 맞으면서도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버리셨습니다. 나를 위해 거룩한 낭비를 하신 것입니다.
2. 영원히 기억됩니다(7절).
마리아의 이러한 헌신은 우리에게 힘을 주고 능력을 주는 헌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타나는 것입니까? 우리를 향한 거룩한 낭비에서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라고 예수님이 자기의 생명을 바쳐 구원할 만한 가치가 우리에게 있겠습니까? 모든 인류를 다 합쳐봐야 그 가치가 예수님에게 가당하기나 하겠습니까? 그냥 다 엎으시고 새로 만들어도 더 좋은 인류들을 만들 수 있는 그 하나님이 왜 자기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이것만큼 가장 극심한 낭비가 아닐 수 없는 일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것보다도 더 심한 낭비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뭔데 우리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셔야 되느냐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 사랑의 능력은 세상의 그 어떤 악한 궤계보다 강한 것입니다. 어떤 지혜보다 더 지혜로운 겁니다. 때로는 미련하고 때로는 약해 보이지만 그 헌신은 어떠한 힘도 깰 수 없는 헌신이었습니다. 그 어떤 악한 것도 막을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이 되어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되었다는 사실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헌신은 능력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그렇게 헌신하는 것을 미련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헌신하여 거룩한 낭비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고 미련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헌신이 가장 큰 능력이 된다는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헌신은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는 가장 큰 복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헌신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영원히 기억되어지는 큰 은혜를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적용 :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 오직 사랑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사랑 외에 다른 이유로 주님을 섬기면 가룟유다처럼 언제든 예수님을 팔게 될 수 있습니다. 마리아처럼까지는 아니라도 하나님이 기억해주실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무엇을 하다 왔느냐고 물으시면 무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기회가 있을 때, 주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것으로 아낌없이 헌신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즐거이 쓰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써야 할 것이지만 주님께서 필요하시다고 하면 쓰임 받으시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지만 주님의 일을 위해 주님이 원하시면 시간을 내어 드리길 바랍니다. 영원히 기억될 헌신은 거룩한 낭비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마르다처럼 손으로 섬기고, 나사로처럼 주님과 함께함으로 섬기고, 마리아처럼 아낌없는 헌신으로 주님께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