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설교본문 : 시편 142편 3절 ~ 7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3년 06월 18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이 시편 142편은 성전에 올라와서 드리는 노래인데, 경배와 찬양입니다. 표제어가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마스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둘람 굴에 다윗이 사울의 칼을 피해 도망 다니던 시기입니다. 그 대단한 다윗이 생명을 건지기 위해 도망을 다녔던 때에 쓰여졌습니다. 아둘람 굴에서의 공동체 생활은 다윗의 인생에서 굉장히 힘든 때였습니다. 동굴과 성전은 너무나 비교가 됩니다. 성전에서 부르는 노래인데 나중에서 아둘람 굴에서 부른 노래를 기도로 연결합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는 자칫하면 외식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멋있게 기도하려 하고, 감동적으로 기도하려 할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는 종교적으로 빠질 수가 많습니다. 성전보다 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본질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아둘람 굴입니다. 그래서 아굴람 굴에서의 기도가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간절히 기도하고 내 모든 소원과 기도의 제목을 아뢰는 거룩한 성전에서도 우리는 소리 내어 기도할 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 주의 이름을 감사드려야 할 이유는?
1. 내 영혼이 연약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3절).
‘영혼이 약해졌다’는 표현은 마음에 슬픔, 분노, 걱정 그리고 두려움, 절망감이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계신 것을 여전히 다윗이 믿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마음이 무너지고 슬프고 두렵고 염려하고 힘든 겁니까? 바로 내 영혼이 약해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그렇게 알지만 그런데도 마음이 무너진 경험이 많으실 겁니다. 왜 그렇게 슬픔은 떠나가지 않으며 염려와 근심은 여전히 내 속에서 나를 괴롭히고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계속 치밀어 오르고 그리고 앞날이 깜깜한 절망감에 빠지는 그런 경우를 우리도 다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때가 어떤 때이냐 하면 내 영혼이 연약해졌을 때입니다. 영혼이 약해지니까 구원의 확신도 기쁨도 평안도 감사도 다 사라진 것처럼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정말 여러분 자신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형편이 어려운 것보다 더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내 영혼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상황은 그럴 만한 충분한 여건이었습니다. 다윗은 지금 주변에 그를 도와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굴속에 들어가서 혼자 있을 때 그 다윗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다윗에게도 가족이 있고 친척도 있고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윗이 이랬습니까? 다윗이 가족을 만나고 친척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면 그 소문이 사울 왕에게 전해져서 다윗이 만났다는 사람은 사울왕이 다 죽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만나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사람들을 보호하려면 다윗은 그 사람에게서 오히려 피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가 막힌 처지에 다윗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결국은 간 곳이 굴속으로 기어들어간 겁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이제 주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밖에는 바라볼 분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다윗은 자기가 굴속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내 영혼이 살려면 어려울 때 더욱 기도하고 찬양해야 내 영혼이 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기도할 때 주님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7절).
이 귀한 찬양이 아둘람 굴에서 나옵니다. 다윗이 찬양하게 해달라고만 기도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이 찬양이 시편 57편에 나옵니다. 아둘람 굴에서 썼던 시편이 둘인데 하나는 142편이고 하나는 57편입니다. 시편 57편에서도 똑같이 처음에는 그 굴속에서 비참했던 다윗의 심정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토해내지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은 굴속에 혼자 있습니다. 다윗은 누구에게 찾아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는데 그런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다윗의 영혼이 살아나니까 그 굴속에서의 눈물의 기도가 찬양의 기도로 변화되기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다윗을 찾아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윗에게 모여든 사람들은 사울 왕의 통치 아래서 원통한 자, 억울한 자, 정말 비참해진 사람들이 다윗에게 모여 들었습니다. 그 시대가 그렇게 어두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윗이 어디 있는지 찾아서 그 아둘람 굴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거기까지 찾아오는 것입니다. 무려 400명이나 되었고 가족들도 불러오니까 나중에는 2000명이 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시험으로 뽑아서 뽑힌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무슨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아서 다윗과 함께 하게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억울하고 애통하고 원통해서 정말 한 맺힌 사람들이 찾아와서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나중에 다윗의 유명한 용사들이 됩니다. 그리고 후에 다윗 왕국의 기둥들이 됩니다. 다윗 왕국은 가장 초라했던 아둘람 굴에서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적용 : 우리가 아무리 비참한 현실 속에 살아도 그보다 훨씬 큰 사랑을 우리는 하나님께 받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물어 보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과 네가 세상에서 고난당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크냐’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일들을 생각해보면 참 감사하고 오히려 찬송드릴 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보다 나를 더 사랑하십니다. 나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와 한 몸이 되셨습니다. 날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삶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슬픔, 좌절, 절망, 두려움, 염려, 미움, 분노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만들어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것을 깨달으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삶에서도 나타나는 예수 생명, 예수 동행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연약해진 여러분의 영혼이 말씀과 찬양과 기도를 통해 새 힘을 얻으시고 여러분의 영혼이 이 땅의 모든 감옥에서 자유해지는 놀라운 은혜가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