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각기 자기의 소견대로
설교본문 : 사사기 21장 25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3년 04월 23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동산 가운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따 먹지 말라고 하시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세기 2:17). 그러나 뱀의 모습으로 나타난 마귀는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세기 3:1). 여자가 대답했습니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세기 3:2-3). 여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죽을까 하노라는 자기 소견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소견대로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아담 이후로 인간은 각기 소견대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각기 소견대로 하는 것은 왜 문제가 될까요? 그것은 각 사람의 선악의 기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을 위해서 자신에게 좋은 것을 찾아 선택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각기 소견대로 했다가 고통과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광야에서 각기 소견대로 사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원망과 불평과 반역을 일삼았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신명기 12:8). 왕이 없는 삶은?
1. 닥치는 대로 살게 됩니다(삿 20:48).
오늘 본문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보면 옳게 하려고 애를 많이 썼던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전반적인 일의 흐름으로 보면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의 시작은 성적, 도덕적 타락입니다. 그런데 그 타락으로 죽은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이후의 문제는 성적이고 도덕적인 타락의 문제가 아닙니다. 올바르게 살려고 올바르게 방향성을 가져가려고 그들이 결정하고 행동했던 일들이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의 흐름을 통해서 죽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전쟁을 통하여 죽었던 이스라엘 지파의 사람만 오만 명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만오천사백 명이 죽은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들만 죽은 것이 아닙니다. 베냐민 지파의 모든 사람들이 다 말살당합니다. 전쟁하러 나온 남자만 2만 6천 명이었으니까 가족들을 추측해보면 무려 10만이 넘어가는 숫자가 죽은 것입니다. 길르앗 야베스 땅에도 4백 명만 살려둡니다. 나머지는 모든 사람들을 다 죽인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합쳐보면 거의 2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은 것입니다. 그들의 소견에 옳다라고 생각하는 일들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나중에 납치당한 200명의 인권은 어떻습니까?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도 따로 있었을 것이고 그들의 인생의 계획도 있었을 것인데 하루아침에 납치를 당해서 말로 못할 그런 인생 가운데 그들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려다가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주권이 없고 하나님이 왕으로 계시지 않고 그들이 그때 그때 옳은 일들을 결정하려고 자기 소견대로 행한 것이 이런 엄청난 피 흘림을 만들어놨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고 상황에 따라, 사람에 의해 닥치는 대로 살게 됩니다.
2.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삿 20:18, 22-23, 26-27).
그래서 그들이 이제야 하나님께 여쭙게 됩니다. 그들이 ‘이건 악이다. 우리가 이건 멸해야겠다. 이제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누가 먼저 올라가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이 질문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이들은 지금 할지 말지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마음에 그들의 옳음은 정해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 거야, 하나님도 옳다라고 여기실 거야’ 그래서 마음은 이미 확정한 것입니다. 상대방은 악이니까 제하여 버리고 저 사람들을 다 쓸어버려야 되는 것으로 마음에 이미 정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 앞에 묻는 것은 ‘누가 먼저 올라갈까요?’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다 저질러놓고 하나님한테 책임지라고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답을 해주십니다. “유다 지파가 가라” 그래서 유다 지파가 가면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집니다. 하나님은 유다 지파가 가면 이긴다라는 얘기를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지금 자기가 옳은 대로 다 결정해놓고 하나님에게 방법을 물어봤을 때 하나님은 그냥 얘기해 주신 것이지 승리를 주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패배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두 번째, 세 번 째 계속 그들은 하나님 앞에 묻습니다. 그렇게 몇 차례 패하고 나서 이제 이들이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 어떠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울었어야 합니다. 그들이 이미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관철하고 옳은 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를 겸손히 듣기 위해 무릎을 꿇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삶의 생각과 행동, 말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인정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제야 하나님이 ‘내일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겠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할 때 하나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적용 : 우리는 우리의 삶의 주권을 하나님 앞에 맡겨야 합니다. 내 소견에 옳고 그름을 유보하고 하나님이 옳다고 여기시는 것들을 알기 위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알기 위해 우리는 판단과 심판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그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내 생각으로 옳은 것 같아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시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내 생각으로 잘못된 것 같아도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면 해야 합니다. 신앙의 사람과 불신앙의 사람은 여기서 갈라집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비우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그 은혜를 깨닫고 예수님을 위해 살고자 힘쓴다면 자연스럽게 자기 소견을 점점 내려놓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