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설교본문 : 사사기 10장 15~16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3년 02월 26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기생의 아들이었던 입다는 본처의 자식들에게 구박 받다가 쫒겨났던 인물입니다(삿 11:2). 그래서 입다는 ‘돕’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잡류’(개역개정), 또는 ‘건달패’(새번역)라고 번역했지만 원어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도덕적,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래저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입다는 ‘큰 용사’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암몬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게 되니까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입다에게 지휘관이 되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단지 고향 땅에서 다시 살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사사로 초빙하겠다는 큰 제안을 받게 되어 수락하게 됩니다. 자기들에게 주어진 권력과 경제력을 지키기에 급급해서 하나님을 우선순위 밖에 놓은 앞에 있는 사람들보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입다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을 사사기는 보여주고 싶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을 오늘도 택하여 쓰십니다. 그래서 입다는 그의 이름대로(그가 열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됩니다. 비록 입다의 출생이나 환경은 열악했지만 입다는 그것을 원망이나 복수의 이유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하는 은혜로 여긴 입다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워주신 것입니다(삿 11:29). 그래서 전에는 상처 입은 입다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이제는 성령을 입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가 쓰임 받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여 구원에 있어서 가장 무력한 존재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내 삶의 절대 우선순위로 두는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1. 우상 숭배를 떠나야 합니다.
입다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 갑자기 뜬금없는 서원을 합니다. 그 서원은 ‘내가 이기고 집에 평안히 돌아갈 때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 첫 번째 사람을 여호와께 번제물로 드리겠다’라는 서원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서원을 하라고 조건을 제시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갑자기 입다가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입다는 왜 이렇게 서원을 하겠습니까?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앞에 좋은 것을 제시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더 잘 응답해주실 것 같다는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한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할 때 조건을 따지고 조건을 충족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회개를 할 때도 회개가 구원의 조건처럼 이해될 때가 많습니다. 회개하면 구원받고 회개하면 죄 사함 받는 것처럼 그 회개가 어떠한 구원의 전제 조건처럼 우리가 이해하고 그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과적으로는 맞지만 이해하는 과정이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의 회개는 구원을 위한 전제 조건이 아닙니다. 회개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우리의 은혜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조건을 충족한 사람들만 받아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지 우리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따지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리숙하지만 우리의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은 그 회개를 받아주시는 겁니다. 어떠한 조건이 충족되어지면 구원 받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조건이 충족되어지고 가능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상숭배를 떠나야 합니다.
2. 주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서원 자체가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나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래적인 서원입니다. 나의 욕심과 나의 어떤 일들에 대하여 인간적으로 보다 더 유리한 일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내 안에서의 마음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입다는 어떻게 보면 자기가 갑자기 사사가 되어진 다음에 암몬이라는 강한 군대와 싸우는 것이 많이 두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하나님 자기를 잘 나타내기를 원했고 그러다 보니까 그가 돕이라는 이방 땅에서 보고 몸에 익힌 것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 이방 땅의 신들은 가장 큰 제물이 자녀를 바치는 그러한 제의를 중요하게 여겼던 신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도 뭔가 중요한 것들을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해드려야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무서운 것은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은 우리가 치유하고 변화시켜야 할 선교의 현장인데 정말 무서운 것은 나도 모르게 세상에 물들어져 있는 교회(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하나님이 성도를 도우시는 이유는 선을 행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고통에 마음이 쓰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를 충족하기 때문에가 아닙니다. 그들이 그렇게 억압당하고 고통하고 신음하는 그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운 입다이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서원(작정)이 우리를 굉장히 힘들게 하는 그런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세상적인 조건, 세상적인 방법들이 얼마나 믿음에 큰 장애물이 오히려 되는지를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오직 주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적용 :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①우상 숭배를 떠나야 합니다. ②주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사 입다의 시대는 가능성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을 마음으로 근심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과 진심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신 것을 하나님 앞에서 즐거이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경험하기를 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붙잡고 하나님의 도우심의 자리에 온전히 설 수 있는 우리가 다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