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여호와를 위한 시작
설교본문 : 사사기 6장 23~24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3년 02월 19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사사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의 요아스의 아들(사사기 6:11)로 바알 우상숭배를 깨드렸다고 해서 여룹바알 또는 여룹 베셋이라고도 불렸습니다(사사기 6:32). 오브라에서 살다가(사사기 6 : 24) 사사가 되었는데 미디안을 치기 위하여 길르앗산에 모여온 3만 2천 명 중에서 3백 명을 선발해서 이들로써 미디안의 대군을 이스르엘 들판에서 격파하여 7년간 학대받던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40년간 평화를 누리게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놀랍게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새롭게 부르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 닛시’, 또한 ‘여호와 라파’, 그리고 기드온의 ‘여호와 살롬’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찬양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러한 이름들을 볼 때에 그 모든 이름들 중에 가장 우리들에게 항상 필요하고 간절히 사모하는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샬롬’일 것입니다. 그러한 여호와 샬롬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의 모든 삶에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의 고백에서 하나님은 샬롬의 하나님, 곧 평강의 하나님이 되어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샬롬은,
1. 여호와를 위한 시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화와 평강에 대한 개념이 오해될 때가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여호와 샬롬의 자리는 편안한 자리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단지 편안한 자리는 어떠한 것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자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얘기가 나옵니다. 한 해의 소출을 엄청나게 많이 얻어서 그 소출을 어디에 쌓아놓을까 걱정하는 부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이제 먹고 자고 누워 평안히 쉴 수 있겠구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의 자리가 세상에서 요구하는 편안의 자리와 똑같이 생각하는 잘못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제공하고 있는 편안한 자리에서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라고 잘못 생각하며 그것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먹고 입는 것이 편안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들에게 평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먹을 것이 없을 때는 먹을 것만 있으면 평화로울 것 같았지만 먹을 것이 이제 충분해졌지만 그것이 사람들에게 평화를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모든 일들의 복지가 발달하고 있지만 복지가 발달한 만큼 범죄율이 떨어지고 행복한 나라가 되고 있다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호와 샬롬이라고 얘기했을 때 그 샬롬의 현상을 세상의 그런 편안한 모습들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고 계십니다. 오늘 보면 기드온이 여호와를 만나고 죽지 않게 되어서 두려움을 없애게 되어지고 여호와 살롬의 은혜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여호와 샬롬의 은혜를 입은 그 다음 바로 그에게 도전되어지는 상황은 어떠한 상황이었습니까? 여호와께서 여호와 샬롬의 은혜를 주셨던 그날 밤에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네 아버지의 수소를 끌고 와서 바알과 아세라 상을 찍어내고 그것을 번제물로 삼아 드려라’라고 얘기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평화는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는 것을 받아먹게 되는 편안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모든 삶의 조건들이 아무 문제가 없는 그런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여호와 샬롬은 무엇인가를 다 이루어주시는 자리가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내고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자리가 여호와 샬롬의 자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2. 감당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평과 불만을 가질 때가 간혹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평강이 임해야 되는데 내 삶이 평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뭘 좀 하려고 그래도 ‘여건이 안 좋아서 내가 일을 못합니다’ 하는 그런 성도들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형편이 안 됩니다. 뭐가 이래서. 제가 이래서. 우리 애들 다 키우고 나서. 애들 시험 끝나고 나서. 이 사업에 고비만 넘기고 나서...’가 끊임없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가 없는 그런 상황을 만나면 그때서야 여호와 샬롬이 이루어지고 샬롬이 이루어지면 그때서야 뭔가 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자리는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모든 삶의 문제가 끝나고 나서 편안하게 된 다음에 하나님의 일들을 하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삶의 자리들은 절대로 우리들에게 허락되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삶의 자리는 그 자체가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순서는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샬롬이 있는 그다음에 완전한 평안의 자리에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자리는 우리에게 절대로 허락되지 않습니다. 여호와 샬롬의 자리는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과 아픔이 있더라도 그러한 모든 자리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감당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기드온을 보십시오. 여호와 샬롬의 큰 은혜를 입었지만 그 뒤로도 기드온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가 양털을 가지고 하나님을 두 번이나 시험하지 않습니까? 한 번만 하나님 앞에 그렇게 얘기해도 대단한데 두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려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다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그 모든 것들을 다 이루어 주십니다. 기드온은 많이 부족한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믿고 나가면 되는데 기드온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그를 계속 붙잡아주시고 그에게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계속해서 주십니다. 그런 모든 과정 가운데 기드온이 버티고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어디로부터 시작하는 겁니까? 하나님에 대한 만남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의 마음의 중심은 많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그 마음이 여호와 샬롬, 평강의 시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샬롬, 하나님의 평강은 한번 감당해봐야겠다는 힘을 주심으로 시작됩니다.
적용 : 여호와 샬롬은 ① 여호와를 위한 시작입니다. 그리고 ②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대적과 싸울 수 있게 하는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아무런 싸움과 다툼도 없이 편안하게 사는 삶의 자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대적을 향하여 싸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여러분과 만나주시고 여러분들에게 어떤 영적인 전쟁을 명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주님께 받으셔야 합니다. 그곳에서 진정한 평안과 평강과 평화가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우리 지역과 우리 나라와 우리 민족이 평강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세계 열방이 평강하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삶의 자리에서 이번 한주간도 ‘여호와 샬롬’을 믿음으로 도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기버의 축복, 개척교회 설립을 위해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