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가나안의 복을 누리려면
설교본문 : 골로새서 3장 4절 ~ 5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3년 01월 15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새해에 가나안의 복을 누리고 나누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가나안의 복을 정말 제대로 잘 누리려면 반드시 극복해야 되는 것이 바알 신앙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고생을 하고 가나안에 들어가고 나서 거기서 망한 이유는 바알 신앙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광야의 연단을 받는 이유도 오직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제 먹고 살 만한 형편이 되어서도 그때 정말 조심해야 될 것이 바알 신앙입니다. 물론 지금 현재 우리에게는 더 이상 바알 종교가 없고, 바알 신전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무서운 것은 우리의 마음 안에 바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구체적으로 ‘우리 안에 있는 바알을 제거하고 가나안의 복을 누리는 비결’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땅의 지체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바알 숭배는 한 마디로 탐심입니다. 우리가 땅의 지체를 죽여야 되는데 그 지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몇 가지 예를 듭니다.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 같은 것들이 다 육의 지체이고 우리 육신을 통해서 일어나는 죄의 본성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절대 그런 상황에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특별히 하나를 딱 지목을 했는데 탐심을 지목을 하고 이것은 우상숭배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망하게 된 이유가 바로 그 땅의 우상숭배를 극복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알이었는데 바알의 핵심이 바로 탐심입니다. 탐심이 한 번 들어오면 그러면 사람이 실제로 완전히 영적으로 눈이 멀어버립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분들을 종종 봅니다. 도무지 대화가 안되는 분, 한 번 이렇게 돈에 대한 욕심이 가득히 들어오면 어떻게 못 해보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돈에 대한 욕심이 한 번 들면 누가 말릴 것을 또 알아서 큰일을 덥썩 저지르고 난 다음에 그러고 와서 어려움을 이야기 하고 기도를 부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왜 결정하기 전에 같이 기도 하시고 하시지 먼저 저질렀느냐’고 여쭈면, ‘말릴까 봐, 못하게 할까 봐’ 미리 이야기를 안 했다고 답합니다. 그러니까 본인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겁니다. 누구한테 이야기해봐야 하지 말라고 그럴 거다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인 스스로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한 번 이렇게 돈 욕심이 생기면 ‘이번에 어거 잘 되면 주님과 제가 5대 5로 나누십시다’하는 식으로 하나님께 거래하려는 분도 계십니다. 탐심이 한 번 우리 마음을 사로잡아버리면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비치지만 자기는 전혀 깨닫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말씀도 안 들리고, 기도도 안 되는 이런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탐심이 진짜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가나안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 땅의 지체인 탐심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2. 나눔으로 주께 받아야 합니다.
가나안의 복을 누리는 비결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광야를 지나서 이제 먹고 살 만한 가나안을 주셨다면 그 가나안의 복을 계속 누리는 비결을 가르쳐 주셨는데 한 마디로 ‘주라’입니다. ‘주라는 것은 완전히 탐심과 반대입니다. 탐심은 계속 움켜잡는 겁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소유 중에 어떤 것은 먹을 양식이고 어떤 것은 심을 씨앗입니다. 다 먹어버리면 안 됩니다. 심을 씨앗까지 먹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 복이 없게 사는 거고 다시 광야로 보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나만 먹고 살아야 되는 광야 길로 다시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런 탐심을 내가 이길 수 있습니까? 여러분도 나름대로 탐심 때문에 결단도 해보고 또 고쳐야 되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내 의지대로 잘 안됩니다. 영적인 문제는 내 의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직 한 분, 죄보다 크고 세상보다 더 크신 예수님을 정말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살면서 세상이 좋게 느껴지고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인간적인 본능의 욕심들을 마귀가 계속 부추깁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가 아주 탐스럽고 먹음직하게 이렇게 보이게 만들어서 따먹게 만들 듯이 실제로는 그것을 먹으면 정말 영원히 죽는데도 먹고 죽는 것이 더 좋아 보이게 만듭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합니까? 예수님을 정말 만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정말 만나면 그러면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떤 처지에서도 만족한다고 고백합니다(빌 4:11~13). 사도 바울이 만약에 돈을 벌어서 기부했다면 그는 아마 많은 돈을 기부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는 이제 더 이상 무엇을 더 소유하고자 하는 이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처지에 두셔도 감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만난 주님이 늘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늘 사도 바울이 예수님 안에 거했기 때문에 주님께 받는 삶이었고 이웃에게 나누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적용 : 우리가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려면 우리 속에 바알이 끊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에 보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에 있는 이 탐심을 버리는 것도 어려운데 죽이라니 이게 가능한가 싶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 사건이듯, 이미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이제부터는 믿고 사느냐, 안 믿고 그렇게 안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 옛사람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때 그 옛 사람 속에는 탐심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 할 일은 주님이 나와 함께 십자가에 죽으셔서 탐심의 종이었던 나도 이미 죽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새로운 존재로서 나눔과 섬김을 통해 주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