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하나님이 위로하십니다
설교본문 : 이사야 40장 1절, 11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2년 12월 18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위로를 경험하는데 어떤 사람은 위로를 경험하지 못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진짜 하나님의 위로가 느껴진다며 예배에 와서 앉으면 눈물부터 흘리는데 어떤 분은 눈이 말라 있고 건조합니다. 어떤 분이 이제 ‘목사님 지금 너무 마음이 아픈 일이 있어서 꼭 내가 기도 한 번 목사님 받고 싶습니다’라고 기도를 요청했는데 그 주간에 스케줄이 이미 가득 차 있어서 한주 정도 뒤로 약속을 잡아 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주 뒤에 이제 심방으로 찾아뵙게 될 때면, 그러면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목사님, 이제 기도 안 해주셔도 됩니다. 예배 시간에 다 응답받았습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이 다 위로해 주시고 눈물도 다 씻어주셨기 때문에 목사님 저 말고 다른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이런 일들을 그렇게나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왜 누구는 이런 직접적인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는데 왜 누구는 그런 하나님의 위로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1. 나는 유한한 인생입니다(나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꽃과 같다고 외쳐라’라고 이렇게 명령을 내리시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육체는 풀과 같고 들의 꽃과 같다’라고 할 때 풀과 꽃이 어떤 부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까? 풀과 꽃의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풀과 꽃의 어느 부분을 강조하는지는 바로 그다음 7절을 보면 나옵니다. 6절 끝에 보시면,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에 이어서 7절에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드니’ 또 그다음 8절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육체가 풀 같고 꽃 같다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만큼 아름답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우리의 육체는 그만큼 시들기 쉽고 그만큼 초라해지기 쉽고 그만큼 한계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는 풀이고 꽃인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내가 이렇게 마르기 쉬운 풀 같고 시들기 쉬운 꽃 같은 유한한 인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첫 번째 전제입니다.
2.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누리기 위해서는 나는 풀과 같고 나는 들의 꽃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하는 그 자리에서 ‘여기에 도우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젊을 때는 자기를 너무 몰라서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내가 아주 대단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고 교만하고 그랬다가 나이가 들면서 이제 자기를 좀 알게 되면 ‘내가 사실은 보잘 것 없는 인생이구나, 그냥 안개 같은 인생이구나, 내가 쓸데없이 교만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을 깨닫는 그 순간에 여러분은 두 갈래의 길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두 갈래 중에 한 길로 가야 합니다. 한 길은 그냥 내버려 두면 가게 되는 길인데, ‘내가 우울하고, 내가 초라하고,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길입니다. 왜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불면증이 많습니까? 자기를 자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뭐가 좀 되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내가 잘난 맛으로 살았는데 어느 날 이 허상이 다 벗겨지고 나니까 내가 너무나 초라하고 우울하고 한심한 것입니다. 10대 아이들보다 50대, 60대, 70대가 우울증이 더 많은 이유가 그런 것입니다. 내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할 때 내버려 두면 저절로 가는 길로 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길은, 그때야말로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여기에 계시다’는 것을 발견하는 좋은 길을 만난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 나는 이 두 갈래의 길 중에 어느 길로 가고 있습니까?
적용 : 우리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을 위로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위로를 내가 못 경험했다고 ‘그런 것은 다 거짓말이다’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에서도 도우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사는 분들이 너무나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위로를 원한다면 조건이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너는 안개 같은 존재, 너는 풀과 같은 존재, 너는 시들기 쉬운 들의 꽃과 같은 존재라는 이 사실을 너는 인정해야 된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해서 우울한 쪽으로 빠지지 말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기 계시는구나, 나를 위로하기 원하시는구나 하는 이것을 보는 눈이 뜨여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논리로, 이론으로 그렇게 하는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성탄을 맞는 것과 같이 사실을 경험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동안 안개 같은 나 자신인 것을 내가 모르고 좀 잘 되는 하나를 붙잡고 인생의 거품 속에 빠져서 내가 엄청나게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인식했던 이 거품들이 다 꺼지고 누가 뭐라 그래도 우리 인생은 시들어가는 풀과 같은 존재고 시들어가는 꽃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먼저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해 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 초청받아 오신 분들의 그 귀한 영혼을 성령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셔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하나님이 위로해주시는 새로운 길’이 활짝 열리는 놀라운 사건을 우리 모두가 다 경험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