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풍성한 삶, 새로운 관계
설교본문 : 요한복음 15장 12절 ~ 17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2년 09월 04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우리는 인생에서 인간관계 사이에 풍성한 사랑을 주고받고 살 수 있다면 그럼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순수하고 깨끗하고 따뜻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다면 그렇다면 사는 것 같을 텐데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그런 생각들을 여러분들 아마 다 하실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 모두는 그렇게 모든 사람들과 평화를 누릴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내 주변에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좀 더 사랑을 나누면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우리 모두는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관계를 잘 유지하고 좋은 관계로 발전시키고 싶은데도 관계가 잘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럼 왜 우리가 사랑을 잘 못할까요? 두 가지 아주 중요한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1.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잘 모릅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신 적 있습니까? 우리는 사랑하는 법은 실제로 부모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나를 사랑해주는 방식을 통해서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인격적이고 친밀한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배웁니다. 그런데 우리의 부모도 거의 사랑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잘 사랑하지 못합니다. 학교에 가면 사랑하는 법을 배워주던가요? 학교를 가면 어릴 때 초등학교 선생님은 우리한테는 정말 하늘같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우리들을 잘 사랑해주고 받아주지 않으면 우리는 굉장히 깊은 상처를 받게 되고 우리의 몸을 도사리게 되는 그런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가만히 보니까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대중매체를 통해서 많이 배우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를 통해서 ‘아, 저런 것이 사랑인가 보다’ 또 영화 같은 것을 통해서, 조금 더 발전되신 분들은 책을 독서를 통해서 도움을 얻는데 요즘 많이 나오는 감동 영상 이런 대중매체들을 보면서 사랑이 이런 건가보다 하고 이렇게 배우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잘 못하는 이유는 사랑을 인격적으로 잘 배우질 않아서 그렇습니다.
2.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방법을 좀 알아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내 속에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사랑이라더라, 사랑하면 희생하는 거라더라’하지만 그런데 만나서 서로 얼굴을 보면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 사람을 위해서는 난 사랑을 안 하고 싶어’ 하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상 받아들이기가 힘들 때도 있고 못할 것만 같습니다. 사랑하는 방법들을 조금 알아도 잘 안 되는 것이 내 속에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동기가 유발이 안 됩니다. 내 속에서 이 두 가지 정도가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사랑할 힘이 나한테 없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 두 가지에 대해서 뭔가를 얘기해줍니다(12절). 아주 중요한 단어가 하나 나오는데 그 단어는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더 중요한데 ‘같이’라는 단어입니다. ‘같이’ 이것이 아주 키워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열쇠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렇게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열 두 명이 앉아 있었단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3년, 4년 정도 같이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그들을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거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그러면 제자들은 금방 알아듣습니다. ‘그래, 예수님이 나를 그렇게 사랑했지. 나한테 그렇게 하셨지’하고 금방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새로운 관계의 사랑의 원리는?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이제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의 원리는,
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가치를 보는 것입니다.
② 분별하는 것입니다.
③ 예수님 같이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④ 예수님처럼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⑤ 예수님은 사랑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⑥ 동심원의 원칙을 고수해야 합니다.
⑦ 마지막 원리는 예수님 같이 거절될 사랑을 예상해야 합니다.
저는 이 일곱 가지를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이걸 체득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일곱 가지를 묵상하며 계속 생각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잘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7가지 사랑의 원리를 이번 추석 명절에 우리 가족들에게 한번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적용 : 그런데 이런 방법을 알아도 더 큰 문제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내 속에 있는 문제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싶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 같이’라고 얘기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위해서 죽을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생명을 준다면 그거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얘기를 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 가장 큰 사랑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불러내기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큰 사랑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내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내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오는 겁니다. 사랑은 받아본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는 열두 명 제자들을 앞에 앉혀놓고 얘기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해라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이 사랑을 알게 될 거다’라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주변에는 수천 명이 그 당시에 있었고 세계 곳곳에 기아와 빈곤과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열두 명에게 집중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됐습니까? 2천 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여기에 앉아있는 우리들도 그 사랑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주변에 여러분들이 사랑해야 될 사람들을 사랑하십시오. 그게 한 열 명쯤 되고, 한 스무 명쯤 될 겁니다. 그 사람들을 사랑하십시오.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세상이 변화됩니다. 2천년이 지나서 그 팔레스틴 한 구석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그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 전달됐던 것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몇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면 세상이 치유 받고 점점 변화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함께 나누는 삶입니다. 이런 풍성한 삶의 새로운 관계를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