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풍성한 삶, 그 본질
설교본문 : 요한복음 15장 1절 ~ 6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2년 08월 07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보다도 더 깊은 본질적인 그런 유대가 있다고 성경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그런 관계를 잘 유지할 때만 사람은 행복할 수 있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성경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마치 부모님과의 관계, 자식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도 사람이 행복하지 못한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대로 맺고 그 관계성 속에 있지 않는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도 사람은 행복할 수 없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가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이것에 대해서 굉장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고 사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이 풍성한 삶에 대해 어떻게 우리가 그런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이 풍성한 삶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얘기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풍성한 삶의 본질을 누리려면?
1. 분명한 입장을 정해야 합니다.
풍성한 삶의 본질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과 나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을 정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매우 메마른 땅입니다. 그곳은 사실 포도를 심기가 어려운 땅입니다. 그런데 포도나무를 심으면 비가 없기 때문에 포도나무를 땅에 지면에서 아주 가까이에 붙여놓습니다. 지면에서 더 높이 올라오면 올라올수록 수증기가 빨리 날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바닥에 거의 붙입니다. 돌 하나 놓을 정도로 붙입니다. 그리고 수분이 없기 때문에 그 근처에 돌들을 놓아둡니다. 왜 돌을 놓아둘까요? 농사를 지으시는 분은 좀 아실지도 모르는데 돌을 놓으면 거기에 아침에 이슬이 맺히게 됩니다. 그 이슬로 포도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에서는 농사 짓기가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나무가 이렇게 있으면 농부는 딱 보고 이거는 열매를 맺을 가지, 이건 열매를 못 맺을 가지인지를 압니다. 그럼 열매를 못 맺을 가지를 놔두면 어떻게 될까요? 수분을 낭비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가지는 꺾습니다.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꺾는 것입니다. 농부가 세심하게 나무들을 보면서 그렇게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한테 풍성한 삶을 주길 원하십니다. 매력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기를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그런데 거기에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은 우리가 하나님께 붙어 있다는 조건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그 안에 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생명을 누릴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모든 것을 배려했지만 그것은 상당히 조건적입니다. 그렇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주 메마른 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이러한 풍성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농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인 것입니다.
2. 분명한 출발점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누군지 보여주셨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얘기 했습니다. “나를 봤으면 아버지를 본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라고 하는 그 긴 책이 예수님 한 분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서 다른 각도에서 쓰여졌냐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가르쳐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님이 그런 분이구나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우리가 어떻게 갈 수 있는지도 가르쳐주십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풍성한 삶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분명한 출발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고, 하나님께 어떻게 갈 수 있는지,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지 보여줬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인격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기 때문에 교회라고 하는 종교적인 행위를 계속하지만 내 속에 생명력이 흐르고 내 속에서부터 삶이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이 그런 분입니까?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 갈 수 있습니까? 그럼 내가 그 예수님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명한 출발점이 우리에게는 있어야 됩니다.
3. 예수님과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나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과 깊은 사랑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겠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기계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풍성한 삶의 본질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살아있는 관계입니다. 그런 관계속에 들어갈 때 사람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상황이 잘 바뀌지 않습니다. 대개 크리스천들은 행복해합니다. 그런데 왜 행복해지나 하고 이렇게 보면 상황이 바뀌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릴 때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점점 하게 되면 상황은 하나도 안 바뀔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자세가 변화됩니다. 나의 뒤를 밀어주고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점점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됩니다. 상황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각과 나의 자세가 바뀝니다. 나의 시각과 자세가 바뀌는 이유는 내 뒤에서 나를 믿어주시는 분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과의 깊은 사랑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풍성한 삶은 가능합니다. 예수님과 삶의 모든 현장에서 깊이 있는 사랑을 나누십시오. 이것은 사랑이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고 과정입니다. 사랑은 자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날마다 더욱 자라가야 됩니다.
적용 : 풍성한 삶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요즘 좀 좋으십니까? 좀 어려움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살고있는 삶의 현장은 이스라엘의 포도원과 같이 이렇게 메마르고 척박한 곳입니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잘 살아낼 수 없는 곳입니다. 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살아내 보십시오. 그러나 스스로가 ‘아니네. 이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은 내가 약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해지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물밀듯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더 이상 가지가 말라가듯이 점차적으로 말라가는 그런 과정속에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