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설교본문 : 히브리서 12장 1절 ~ 2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2년 05월 29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내 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시니’가 점점 되면 이제 우리는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좀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를 달려가지 못하게 발목을 붙잡는 변명들이 우리를 계속 붙잡고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오늘은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달려감에 있어서 우리의 치유와 회복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의 회복과 치유를 방해하는 나쁜 변명은?
1. “아무도 날 이해할 수 없어”
우리의 회복과 치유를 방해하는 나쁜 변명 첫 번째는 ‘아무도 날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날 이해할 수 없어. 내가 당한 일은 나만 알고 있고, 나처럼 어려운 일을 겪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어. 누구에게 이 이야기를 하겠어? 누가 이걸 이해하겠어?” 그리고 이런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너무나 독특해서 다른 사람들이 다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봤자 사실 그것을 잘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고? 아니야, 당신에게는 지금 허다한 군중이 당신을 지금 내려다보고 있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허다한 무리가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 무리는 바로 히브리서 11장에 나왔던 믿음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앞의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입니다. 성경에 나왔던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의 이름이 11장에는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이 무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지금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은 그냥 우리를 구경하는 구경꾼들이 아니라 우리가 달려갔던 그 믿음의 달음박질을 과거에 행했던 사람들입니다. 또한 우리가 살았던 그 순례의 길을 이미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삶을 잘 견뎌내었고 그 삶을 살아냈던 사람들이 지금 내려다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관중들은 구경꾼이 아니고 그들은 벌써 이 길을 걸었고, 우리보다 더 어려운 길을 이겨낸 믿음의 선배들입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이 믿음의 싸움과 믿음의 달리기를 완주하길 바라며 사랑 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치유와 회복을 방해하는 첫 번째 변명인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라는 말은 이제 내 마음 속에서 내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이게 난데, 어쩌라고?”
두 번째 변명은 ‘이게 난데, 어쩌라고?’라는 것입니다. ‘이게 나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BJR형입니다. 이러한 ‘배 째라 형’은 제일 무서운 스타일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내면에 이런 생각을 품고 있으니 이것보다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이게 나야’ 이렇게 얘기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12장 1절을 보면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이 있으니’ 그다음에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게 나야’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내 자신에게 내가 스스로 짊어지는 짐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게 나야’라고 말하게 하는 생각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무거운 마음의 짐의 중심에는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벗어버리고’라고 이어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죄라는 단어의 단수와 복수가 참 중요한데 여기서는 영어성경을 보면 ‘The Sin’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죄의 본성(원죄)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 여러 가지 무거운 짐을 야기시키는 것의 중심에 있는 가장 무거운 짐이 바로 '그 죄'입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나 중심성’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죄의 중심적인 생각이 무엇입니까? 씬(SIN)의 가운데 있는 알파벳은 ‘아이(I)’입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죄의 근본적인 마음입니다. 신앙 생활은 나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의 중심의 삶으로 중심이 옮겨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는데, 죄가 무슨 거짓말하고 나쁜 짓하고 속이고 이런 것들이 죄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죄의 결과일 뿐입니다. 죄는 본질적으로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다. 내가 만물의 중심이다’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이고 그런 경향이고, 그 본성이 죄입니다.
3. “그냥 이렇게 살다 가는 거죠”
이런 생각이 나오는 이유는 많은 경우에 우리 주변에 아주 인격과 신앙이 함께 어우러져서 성숙한 분들을 전혀 만나지 못한 데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도 보면 성격도 좀 그러시고, 저분은 왜 저럴까? 이런 생각이 젊은 사람들이 들면 ‘사는 게 다 그런 건가 보다’라고 이렇게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는 아주 신앙과 인격이 잘 조화되신 여러 귀한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지만 한국 교회들의 일반적인 특징이 신앙과 인격이 함께 어우러진 사람들이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바라보셔야 될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라고 그랬는데 표준새번역에서는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 덕분에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주신 분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다음에 예수님은 믿음을 완전케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뛸 때 뛸 수 있게 해주신 분이 예수님이라면 마지막 결승전까지 뛰게 해주시는 분이 예수님이란 말씀입니다. 그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믿음을 포기하거나 우리의 신앙이 도달해야 될 단계를 결코 늦추거나 낮추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여기에서 바라보라는 것은 '내 시선을 주님께 고정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다른 좌우를 보지 말고, 다른 사람 때문에 믿음의 경주를 이탈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께 내 눈을 고정시키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적용 : 저는 우리 교회가 치유와 회복이 많이 일어나는 그런 소중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지길 바라고, 우리 교회를 통해서 자기 속에 있었던 많은 짐들로부터 해방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껏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정말 치유되고 회복되면 우리가 이 땅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치유받고 회복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을 회복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려면 내 속에 있는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그것을 해결하고 내가 점점 건강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믿음의 근력이 붙으면서 세상 사람들을 돕고 섬기고 사랑하고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어떠한 구호도, 제도도, 정치도 이 사회를 치유하고 회복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계속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 땅은 치유받고 회복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과 저를 부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사명이고 비전입니다. 이 회복과 치유는 어느 한순간에 일어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평생 함께 달려가면서 계속해서 함께 경험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진실한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며 함께 이것을 경험하는 우리 모든 중앙가족들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