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부모들아
설교본문 : 에베소서 6장 4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2년 05월 01일
설교요약 :
어린이주일로 함께 예배 드릴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내가 내 자녀를 아무리 잘 키운다고 하더라도 내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할 다른 아이들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면 내 아이를 아무리 잘 키워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식은 귀하게만 키우는 것이 잘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떠 받들어서 키워서도 안되고, 애지중지 키우는 것도 잘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내버려두고 방목하는 것이 잘 키우는 것도 아닙니다. 흔히들 ‘내 자식 내 마음대로 키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틀렸습니다. ‘내 자식’이라는 말도 틀렸고 ‘내 마음대로’라는 말도 틀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 내 자식이 아닌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내 자식이라는 말이 왜 틀렸느냐?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겼다고 해서 '우리 자식'이라는 말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내 자식이 아니라 내게 맡겨진 자식이라고 말하라고 가르칩니다. 기업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슨 기업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부모로부터 땅을 물려받아서 이 땅을 근거로 농사를 짓고 살아가야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화와 전통 속에서 기업이라는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았고 팔더라도 오십 년째가 되면 다시 내게 돌아와서 우리 가문이 책임을 지고 그리고 그곳에서 내 삶의 근거를 삼고 살아야 할 은혜의 자리인 동시에 책임의 자리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업입니다. 자녀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사람들은 사명이 다 다릅니다. 목회자에게는 말씀을 잘 전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교회를 잘 돌보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사명이 있을 것입니다. 사명은 제각각입니다. 그런 것처럼 자녀도 제각각입니다. 자녀 양육의 이슈 앞에서 부모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일꾼입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소작농이다'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땅을 핑계 댈 수 없고 그 땅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열매를 맺어 주님께로 돌려드려야 할 부모는 소작인과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가 ‘좋다, 나쁘다’ 또는 남과 비교해서 ‘더 낫다, 못하다’는 것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혹여라도 정말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자녀들이 있다면 거기서는 더 많은 열매를 맺어야 되는 것이고 정말 좀 돌보기 어려운 그런 자녀를 우리가 위임 받게 되었다면 우리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도 그 상황에서 맺을 수 있는 열매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를 남과 비교하여 더 행복해하거나 기뻐하거나 아니면 슬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내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자식이고 내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의 기업이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2. 성경적인 방법대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양육할 때 바울은 분명한 기준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를 양육할 때의 기준은 우리의 생각이나 판단이나 성격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아니라 주님의 교훈과 주님의 훈계라야 합니다. 자녀가 내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하나님의 기업이기 때문에 내 기준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키워야 합니다. 원론적으로 볼 때 자녀 양육에 있어서 부모들의 보편적인 문제는 일관성이 없거나 객관성이 없거나 임의적이거나 즉흥적이거나 잔혹하거나 심지어 권위를 남용하거나 아니면 방임하는 것이 주로 자녀 양육의 문제로 대두가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부모 세대는 많은 경우에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 노릇을 잘하는 것인지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라고 말씀을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고 키운다는 의미에서 부모 된 권세로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을 성경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노엽게 한다는 기준은 낙심하게 만들고 마음의 분노가 일어나게 만들면 안 된다는 겁니다. 아무리 부모 입장에서는 훈육을 했다고 할지라도 만약 그 훈육의 결과가 자녀를 낙심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노여움을 탔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배운 것이 좀 없다, 아니면 돈이 좀 없다는 그 자체로 자녀가 노여움을 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무책임하거나 비인격적인 것, 자녀에 대하여 인격적으로 그들을 존중하지 않을 때 자녀들은 노여워하게 됩니다. 부모는 자녀를 다스리기 이전에 자신을 먼저 다스려야 됩니다. 일단 잘 들어주어야 합니다. 훈계와 양육에 있어서는 일관성이 있어야 됩니다. 자녀들을 훈계할 때 내 기준이 아니라 받는 사람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하나님의 기업으로 맡게 되었다면 우리는 이 자녀를 양육하는 일에 있어서 계속 하나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주의 뜻대로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방법대로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것입니다.
적용 :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인간의 선택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최소한 결혼은 내가 동의하든지 선택하든지 내 의사가 반영이 되지만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부모를 선택한 사람이 없고 내 자녀를 선택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만큼 이 관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만 있을 뿐입니다. 비록 우리의 몸을 통해 태어나서 나를 통해 양육 받아서 자라나고 있지만 자녀는 내 자식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키우면 안 되고 주님의 뜻대로 주의 훈계와 교훈대로 우리는 키워야 합니다. 내게 맡겨지기는 했지만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뜻대로 키우면 안 됩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길러내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변화시키는 능력은 부모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은 부모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길 뿐입니다. 부모의 역할을 항상 잘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노릇, 남편 노릇, 자식 노릇을 항상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우리 안에 확고해야 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녀를 양육하려고 노력하는 태도만큼은 우리에게 항상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순종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먼저 주의 훈계와 교훈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자녀에게 그것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하나님의 기업으로 인정하고 성경적인 방법대로 자녀를 대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