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괴로울 때 주를 보라
설교본문 : 히브리서 5장 1절 ~ 10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2년 02월 13일
설교요약 :
‘고요할 때 찬송하라, 외로울 때 기도하라, 괴로울 때 주를 보라’ 라는 신앙의 격언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에게 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저 고난을 당하라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능력을 같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고난의 길을 만약에 가야 한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감당할 능력을 주십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짧은 말씀을 들으시고 내 마음에 ‘앞으로 나는 어떤 고난도 감당할 수 있을 거다’라고 이렇게 믿어지게 된다면 그건 주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찬송하고 주께 기도하고 주를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예수님은 구원의 근원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순종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반드시 구원의 근원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뜻입니다. 단지 ‘죽고 난 다음에 영원한 천국에 가게 되겠지요’가 아닙니다. 분명히 우리에게 영원한 영생이 약속되어져 있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 순간에 예수님은 우리의 도움이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매순간 그 때에 맞는 은혜를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순교도 하고 그래서 예수님을 떠나는 사람까지 생길 그 당시에 초대교회에서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히브리서 기자가 이 편지를 하고 있습니다. 고난당하는 성도에게 가장 큰 위로가 있다면 예수님 그분이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가 예수님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고 있는 성경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러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그 상황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그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신 것을 알고 나면 우리도 동일하게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길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대제사장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보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을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속죄 제사를 드려주고 그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 중보자가 바로 대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분이시라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한 때 그러셨다는 게 아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괴로울 때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은 중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지금 힘들지만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힘드십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우리 속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속이 뒤집어지는데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남편, 아내 또는 자녀, 부모 한 사람이라도 그냥 속을 다 뒤집어 놓습니다. 오늘도 예배 잘 드리고 가다가 어떤 한 사람을 만났는데 여러분의 속을 다 뒤집어 놓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가까운 직장 동료 한 사람이 여러분을 살맛이 안 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그 정도라면 어떤 한 사람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것을 참으실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 정도도 아닙니다. 여러분 수도권, 서울, 경기, 인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까? 2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 마음에 있는 분노는 우리하고는 상상도 못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나라 전 세계 인류를 생각해 본다면 지금 하나님의 속이 얼마나 상하시겠습니까? 그걸 수천 년을 그렇게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속상하다, 괴롭다, 견딜 수 없다,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정은 그것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크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참으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예수님 덕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대제사장으로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이 지옥에 가지 않고 심판받지 않고 구원받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3. 예수님으로 충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주 젊은 엄마들이 어린 자녀를 키우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이제 갓 결혼한 젊은 새댁이 아기를 낳으면 좀 걱정스럽습니다. ‘어떻게... 애가 애를 기를까?’ 그런데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나 잘 해내기 때문입니다. 애를 낳은 사람은 그 아이를 향한 사랑이 뜨겁게 일어납니다. 그 사랑이 다 감당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혼자 된 자매가 자녀를 키웁니다.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저 애들 다 어떻게 먹이고 공부시키고 사나? 주변에서 걱정들을 하지만 다 해냅니다. 내 아이들을 굶기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 깊은 아이들을 위한 사랑이 그 엄마를 강하게 만듭니다. 다 먹이고 공부시키고 어엿하게 잘 키워냅니다. 사랑이 해답인 것입니다. 사랑이 일어나면 감당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눈을 바라보고 주님의 눈물을 보는 순간에 그 주님의 사랑이 내 가슴에 들어옵니다. 그렇게 되면 돌덩이처럼 딱딱한 사람도 품게 됩니다. 이것은 주님의 은혜가 부어졌기에 품어지는 것입니다. 목사님도 설교를 할 때 교인이 많으면 설교할 힘이 납니다. 그런데 교인이 적으면 갑자기 허둥대고 힘이 없어집니다. 우리 찬양팀, 찬양대가 열심히 준비하는 찬양들은 정말 엄청난 헌신이 들어 있는 섬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교우들이 많이 와서 함께 예배를 같이 드리면 연습할 때는 정말 대책이 안 서던 분들이 그렇게 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참석한 성도들이 별로 없으면 그러면 연습할 때 힘들었던 것보다 몇 배로 힘들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고 나면 이제 그것도 넘어서게 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고 적게 모이고는 문제가 안 됩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을 보고 주님이 함께 계신 것을 느끼면 단지 그것으로 충분해집니다. 그래서 우리 삶은 예수님으로 점점 충분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나를 위해서 죽으셨구나’하는 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이전과 똑같이 못 삽니다. 주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 나를 위한 주님의 눈물 그리고 내 주위의 VIP를 향한 주님의 눈물을 정말 보고 느끼는 사람은 마음이 완전히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 :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말씀처럼 느껴집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그래야만 예수님을 따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을 보고 주님의 눈에 있는 그 눈물을 보고 나면 이것은 황홀한 초청입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주여, 제가 얼마든지 그리 하겠습니다.” 고난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고 사는 삶은 고난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산다는 것 자체가 이 세상에서는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냥 힘들게만 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시선을 맞추고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 주님의 눈을 바라보고 주님의 눈물을 보고 나면 내 속에 사랑이 돋고 끓습니다. 섬기고 나누는 삶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삶이 힘들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고난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어떠한 형편에서도 두려움과 염려, 미움과 분노 속에서 갇혀 살면 안 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그렇게 살면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오늘부터 주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눈물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것이 완전한 해답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의 삶은 예수님 한분으로 충분해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