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축 성탄, 경배하라
설교본문 : 마태복음 2장 1절 ~ 12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1년 12월 26일
설교요약 :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2장 1절에서 12절 본문으로 ‘축 성탄, 경배하라’라고 하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눕니다. 성경에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두 복음서에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서로 약간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그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아구스도? 그리스도!
누가복음에서는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의 호적을 하라고 명령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긴 걸음을 걷게 되는데 여관에 머물 곳이 없어서 이제 농가의 외양간 같은 곳에서 마리아가 몸을 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천하의 로마 제국 전체의 황제인 가이사 아구스도가 진짜 황제가 아니고 그가 진짜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 가난한 시골 농가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의 호의를 얻어 태어난 이 아기, 그리고 당시에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여겼고 가장 천시 받던 직업군인 목자들에 의하여 그 탄생의 비밀의 소식이 전달되어지는 그 허름한 곳에 오신 ‘예수가 이 땅에 참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진정한 통치자다’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대조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구주, 주님, 그리스도 이런 식으로 묘사를 합니다. 그런데 그 칭호들은 다 고스란히 가이사 아구스도에 대하여도 적용되었던 칭호였습니다. 당시에 시저 황제는 신의 아들이었습니다. 로마에서 황제가 죽으면 죽는 순간 신이 됩니다. 죽는 순간에 신이 되는데 그러면 그 뒤를 이어서 황제에 오른 그 아들은 신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 모든 칭호를 예수님에게 적용하는데 예수님은 지금 가난한 시골 농가의 한 아기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을 하라고 명령을 하면 그러면 온 천하가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대단한 권세를 가지고 행합니다. 그런데 왜 호적을 하라고 명령을 했느냐하면 누가 어디에 얼마나 사나를 알고 그래서 잘 다스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금을 확실히 걷기 위해서 호적을 하는 게 필요했습니다. 세금을 잘 내게 하기 위해서 사실은 로마에서 공무원이 와서 조사를 해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세금 낼 당사자들이 짐을 다 싸가지고 자기 고향에 가서 ‘내가 여기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호적 신고를 하는 겁니다. 자기가 돈 내기 위해서 자기가 돈을 준비해가지고 거기 가서 호적을 신고하고 세금을 내는 것입니다. 황제의 명령 하나로 모든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태어날 때에 로마 제국의 역사에 있어서 그 탄생을 기록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주목을 받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황제만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누가복음은 그 가이사 아구스도와 아무 기록에도 없을 것 같은 예수를 대조하여 누가 진정한 황제냐? 누가 진정한 주권자냐?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헤롯처럼? 동방박사처럼!
오늘 마태복음에서 그 하나님의 오심을 기뻐하고 경배하는 동방 박사들의 모습과 그와 반대되게 경배를 입에 올리지만 누군가를 죽이고자 하는 헤롯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안에 계신 그 하나님에 대하여 참으로 경배드리는 자리에 우리 모두가 설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났다라고 하는 것은 참되신 왕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하는 것은 굉장히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에게 성탄은 기쁜 소식입니까? 헤롯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그 얘기를 듣고는 죽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아마 BC 5년을 전후해서 태어났을 것이라고 예상이 됩니다.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헤롯은 BC 4년 기원전 4년에 죽습니다. 기원전 4년의 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탄생의 이 소동 이후 한 1년 조금 더 살고 죽게 됩니다. 그 전에 기원전 7년 정도에 헤롯은 자기의 두 아들을 죽입니다. 로마에 충성해서 왕 자리를 계속 지키고자 해서 보냈는데 보낸 두 아들이 둘째 셋째였습니다. 첫째 아들은 헤롯과 같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첫째 아들이 모략을 피웁니다. “그 두 녀석이 왕위를 받고서 돌아와서 아버지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헤롯은 그 두 아들을 불러서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첫째 아들 그 장자도 헤롯이 BC 4년에 죽이는데, 이때 이미 헤롯은 죽을 병에 걸려가지고 온 몸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피부병에 소화도 안 되고 천식에 아주 굉장히 고생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스스로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상황이라고 여겨졌을 때에 첫째 아들을 죽여 버립니다. 왜냐하면 그 첫째 아들이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 경배한다는 말이 열세 번 나옵니다. 그중에 오늘 본문에서 세 번이 나옵니다. 동방 박사에게서 두 번 나오고 헤롯의 입에서 한 번이 나옵니다. 동방박사는 내가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하겠다고 얘기하고 예수님에게 가서 아기 예수께 경배를 하는데 헤롯은 나도 가서 경배하게 해달라 말을 하지만 사실은 경배하지 못합니다. 아니 사실 헤롯은 한 번도 그 인생에 진정으로 무언가를 향하여 경배할 만한 대상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자기 인생에 진실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마태복음은 여기 오늘 본문에서 2장에서 경배한다는 말이 나오고 그리고 마지막 28장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뵙고 경배합니다(마 28:17). 마태복음은 경배로 시작하여 경배로 마쳐지는 성경인 것입니다.
적용 : 성경은 우리에게 오늘 이 마태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 나아와 경배하는 이 동방박사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께 나아와 뵙고 경배할 것을 초청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는 경배할 참된 대상이 있으십니까? 온 마음을 다 쏟아 그를 사랑하고 헌신하며 감사하고 기뻐하며 모든 것을 쏟아 붓고도 전혀 아까워하지 않을 그런 진실, 그런 가치, 그런 대상, 그런 하나님이 계십니까? 그 대상이 있는 사람은 그 안에 참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왕이 됩니다. 그런데 그 안에 경배해야 할 어떠한 대상도 가지고 있지 못했던 헤롯은 오직 자기 하나만을 위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골몰하고 공허하게 아무것도 없는 인생을 살다가 움켜쥐어 보았지만 결국 죽고 망하는 무너져 내리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이 성탄의 참된 경배의 자리에 함께 참여하실 것을 초청합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처럼 우리의 구주되신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의 체험을 통해 큰 위로와 기쁨과 소망으로 영원히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