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이겨내게 하는 감사
설교본문 : 사도행전 7장 55절 ~ 60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1년 11월 28일
설교요약 :
처음 교회들은 마음까지 하나 된 사람들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까지 하나 되자’라고 주장한다고 이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까지 하나 된 사람들의 공동체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짜 잘 믿으면 예수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되고 자연스럽게 마음까지 하나 되는 공동체가 점점 되어 갑니다. 서로 사랑하는 진실한 공동체는 마음까지 하나 된 사람들에게 뒤따라오는 열매인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잘하라고 그렇게 하면 할수록 아이들은 더 공부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중요합니다만 공부를 잘하는 것이 목표가 되면 부담이 되고 오히려 좌절이 됩니다. 그리고 공부를 잘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조건이 아닙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행복합니까? 그리고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게만 사는 겁니까? 이 세상의 행복은 다른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때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에 목적을 두면 오히려 뒤틀어지게 됩니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나중에 가면 다 실망하게 됩니다.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은 열매입니다. 공부하는 목적이 분명할 때 공부를 잘하게 되어져야 그게 정상인 것입니다. 고난도 이겨내게 하는 감사의 믿음은 어떻게 가능합니까?
1. 예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오늘 읽은 성경인 스데반의 순교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스데반은 돌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사람이 돌에 맞아서 죽는다는 것처럼 끔찍한 일이 있을까요? 그때 스데반은 참 놀랍게도 얼굴이 천사 같았다고 그랬고 그리고 자기에게 돌 던지는 자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그 순교를 맞아들였습니다. 정말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는 그 끔찍한 순간에 그가 어떻게 그렇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 순교 상황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스데반이 어쩔 수 없어서 돌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부활의 주님을 전하지 않으면 그런 순교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예수님의 부활을 끝까지 전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스데반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행 7:55-56). 바로 이것입니다. 스데반이 순교의 고난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고 주 예수님께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것을 보는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그에게 두려움이 떠나갔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바라볼 때 고난도 감사할 수 있게 되고, 고난도 이겨낼 수 있게 됩니다.
2. 예수님과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 있기에 그것을 위해서 고난당하는 것이 오히려 복이 됩니다. 평생 열심히 살았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는 아무런 어려움을 당한 적이 없었다면 주님 앞에 서는 순간이 그 사람에게는 두려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 ‘편안하냐, 고난이냐’ 이것이 우리의 삶에 판단 기준이 되면 안 됩니다. 어떤 것이 더 편안한 거냐. 어떤 것이 더 고난의 길이냐를 보면서 편안한 쪽으로만 선택하여 사는 삶은 어리석은 삶인 겁니다. 편안한 삶을 추구해 살았지만 주님 앞에 설 때 사시나무처럼 두려워 떠는 사람이 있고 고난의 길을 갔지만 마지막 때 주님 앞에 섰을 때 말할 수 없이 복된 사람이 있습니다. 스데반은 자신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스데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부활의 주님을 사람들에게 끝까지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서 자기가 돌에 맞아 죽어야 된다고 정하셨다면 그게 최선이라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과 헌신을 가진 사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동행할 때 마음까지 하나 되는 열매가 맺어지는 것과 동시에 똑같이 고난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는 믿음이 함께 생기는 겁니다. 이것이 같이 있어야만 비로소 진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놀랍게도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게 하셨지만 그 스데반 순교 사건의 배후 역할을 했던 사울이라고 하는 사람을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의 순교의 뒤를 이어서 정말 엄청난 복음 전도의 사역을 일생동안 감당합니다. 그리고 그도 로마에서 목 베임을 당하여 순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 순간에는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최선이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결정하시고 허락하신 일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적용 : 지금 형편이 말할 수 없이 어려운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을 주목하여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진짜 마음까지 하나 된 그런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려면 고난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함께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진짜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인 사람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경험을 하실 때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주님이 살아계시고 동행하고 계신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찬송을 들을 때, 말씀을 들을 때, 기도하실 때 여전히 여러분 속에 깨달아지고 하나님께서 회개할 제목을 주시고 하나님을 향한 소원이 생기고 복음을 전하고 싶을 때, 주님은 여러분 안에 분명히 살아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 주님께서 지금 여러분을 이끌어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만 따라가면 되는 겁니다.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 대로 순종하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그 훈련을 계속 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 이 상황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시편 23편의 고백대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지나봤으니까 고난도 이겨내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삶에서‘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봤으니까 이젠 더 이상 걱정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하는 고백을 점점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내가 고난 중에도 감사하면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도와주십니다. 감사는 어떠한 고난도 이겨내게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