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위드러브를 실천하는 교회
설교본문 : 사도행전 11장 29절 ~ 30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1년 10월 31일
설교요약 :
세상 속에서 나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렇게 사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일까요? 가끔씩 우리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질문들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내가 속한 교회를 통해 꿈을 꾸고, 소명을 찾아 인생을 드리고 싶다는 성도들을 만나는 것이 참 희귀한 일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전무한 안디옥이라는 도시에서 예수님을 처음으로 믿고 따르기 시작한 그들은 세상 전체가 하나님을 모르고 돌아가는 상황이었지만 자신들의 가치를 폄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단지 안디옥 뿐만 아니라 시리아와 아시아, 헬라 지역 전체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이 이 세상의 소망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교두보와 같은 역할을 감당합니다. 어떻게 각 개인과 공동체의 삶이 이 광대한 세상과 거대한 역사 속에서 이렇게 귀한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까?
1.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섬겼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되었을 다시, 예수님을 따르는 이 도는 유대인들의 한 종파일 뿐이었습니다. 예수는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에 불과했습니다. 그저 한 민족의 종교적인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유대인들에게만 자신을 알려주려고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을 먼저 택하셨던 것은 땅 끝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 스스로가 유대인과 세상 사람들 사이에 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당시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희생시키기까지 했는데 이 놀라운 소식이 유대인이라는 벽 속에 갇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여러 종류의 벽이 있지만, 이 벽은 어떤 벽보다도 위험하고 악질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 놀라운 소식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주고, 특별히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의 직간접적 도움으로 자신들의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을 도왔던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당연히 경제적으로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형편에 맞게 구제금을 만들어서 이 구제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게 됩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이 행위를 단순히 자신들이 받았던 사랑에 대한 보답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와 역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사명 중의 하나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는 벽을 허물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허물어져야 예수님에 대한 놀라운 소식이 하나의 민족 종교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장대현 교회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조국 교회의 역할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역할 속에서, 그런 사명 속에서 작은 지역 교회 하나하나의 역할이 있습니다. 모델 교회란 어떤 교회입니까? 진짜 모델 교회는, 그 시대의 필요를 보고 그 시대의 필요 속에서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일을 감당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그런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아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뿐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사명 곧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을 허무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초대교회도 당시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였습니다. 한국 교회가 시작될 무렵, 장대현교회라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1893년 마펫 선교사가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세운 교회입니다. 구한말 조선의 운명이 다해서 이 땅의 백성들이 소망을 잃었을 때 평양에 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1903년에 장대현교회는 남문외교회를 분립시키고, 다시 2년 후에는 사창골교회를, 다시 1년 후에는 산정현교회를 세우고, 다시 3년 후에 서문외교회를 세웠습니다. 자기 교회를 포함해서 평양에 다섯 개의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15년 동안 전국에 39개의 교회를 세웁니다. 그들은 그저 그들이 알았던 하나님, 그들이 믿었던 하나님, 그들이 사랑하는 예수님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그것만이 이 땅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장대현교회와 나머지 네 교회는 힘을 합하여 평양을 복음화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이렇게 장대현교회는 초기 한국교회의 모델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교회가 필요합니다.
3. 우리 교회는 우리의 사명을 섬겨야 합니다.
먼저, 이 시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은 교회가 늘 해 왔던 것처럼 '복음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입니다.' 세상 속에서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때, 이런 세상 속에서도 의미 있는 삶,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경험하고 하나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동일한 보편적인 사명입니다. 오늘날 모델 교회라면 그 교회는 반드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여야 합니다. 전할 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전해서 그 복음이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진정한 회심이 지속적으로 다양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가하면 교회는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주일예배 집단으로 전락했습니다. 원래 교회는 주일예배 집단이 아닙니다. 주일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은 그 공동체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교회는 절대로 주일에 한번 모이고 산산이 흩어져서 일주일 내내 연락을 끊고 살다가 다시 모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모델 교회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서로의 약함과 부족한 것들을 붙잡고 함께 기도하고 섬기는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셨기 때문에 비록 다르고 싫어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공동체입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성경에서 배운 대로 세상에서 실천하며 사는 교회'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아주 많지만, 그들이 있는 곳에서 복음의 능력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앙생활은 교회 안에서만 하면 된다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란 교회 안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교회 밖에 나가서 신앙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손해될지라도 세상에 나가서 우리가 믿는 신앙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적용 : 이 시대에 필요한 교회가 되려면 깨달은 만큼 최선을 다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할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 나 중심의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나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에 집중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두 번째는, 앞에서 언급한 핵심 가치를 품는 것입니다. 이 가치들은 우리 교회의 핵심 가치이자, 성경이 말씀하시는 중심 가치입니다. 이러한 성경에서 가르치는 원리와 가치를 우리의 마음과 삶의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싶은 어떤 한 사람을 마음에 품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 한 사람이 회심하는 것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고, 애쓰고, 만나서 밥 사주고, 기다리고, 필요한 것을 선물하고, 그들과 대화하는 모든 돌보는 것과 섬기는 일이 이 시대의 사명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 있음을 기억하고 기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작은 섬김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에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모르고도 행했던 안디옥 교회, 장대현 교회, 한국의 초대교인들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 있습니다. 1세기 중엽에 세워진 안디옥 교회가 자기 시대의 사명을 완수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0세기 초 나라와 함께 모든 소망을 잃었던 이 땅에 세워진 장대현교회가 소중한 역할을 감당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인생, 우리 교회는 어떻게 역사 속에서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