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함께 세우는 진실한 공동체
설교본문 : 사도행전 11장 29절 ~ 30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1년 10월 17일
설교요약 :
교회는 불가근 불가원해야 한다고 말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너무 가까워서도 안되고 너무 멀어도 안된다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교회의 문제를 이렇게 저렇게 경험하다가 아파지고 지친 성도들은 아예 '가나안 성도'가 되기도 합니다. '가나안 성도'는 교회에 '안 나가'는 성도들을 뜻하는, 아픈 단어입니다. 요즘같이 모든 공동체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가정이든, 교회이든, 회사든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제각기 모양을 고집하여 울퉁불퉁한 돌들이 모여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어떻게 잘 다듬어져서 여러모로 쓸모 있는 디딤돌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겠습니까? 달리 표현하면, 각자 소리를 내어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는 공동체가 아니라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낼 수 있는 그런 공동체가 가능한가 말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놀랍게도 이런 조화와 화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까? 이 주제는 한국 교회의 현재 상황에서 너무나 중요한 주제입니다. 함께 세우는 진실한 공동체는,
1.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우리가 배우는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공동체에 속해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1:25-26절은 바나바와 사울이 1년간 안디옥 성도들을 가르치며 공동체적인 삶을 살았던 것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실제적인 가족공동체입니다. 말뿐인, 개념뿐인 공동체가 아니라 이 땅에서 경험하지 못한 진짜 공동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적인 상황에서도 교회는 자꾸 작아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꾸밈없이 드러내고 서로에게 속할 수 있는 영적인 분위기와 영적인 구조를 가져야 합니다. 주일 예배만 드리기 위해 슬쩍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예배당입니다. 교회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예배당에 다니는 것입니다. 구름처럼 모인 사람들에게 감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공동체가 없이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교회라 부르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관계적이며 공동체적입니다. 주일에 모인 군중은 교회라기보다는 '주일예배 집단'이라고 부르는 것이 차라리 맞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제도적인 교회에 속하는 것을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공동체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렇게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셨기 때문인 사람들,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교회입니다.
2. 함께 분별해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아주 중요한 격언이 있습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건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기도입니다. "하나님, 우리 공동체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공동체 지도자들이 혹시 하나님의 뜻을 잘못 분별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지도자들의 책임은 참으로 막중합니다. 지도자들은 성경적 공동체의 원리와 상황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것을 가지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 모든 책임은 지도자들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리더들은 만약 어떤 길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질 경우에는 지도자들과 그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공동체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짐으로 넘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그 과정 중에 어려워하는 가족들이 있다면 그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질문에 답해 주고 같이 고민해야 합니다. 교회가 함께 분별해 나가는 기도의 과정, 이 과정 자체가 정말 중요합니다.
3. 함께 순종해야 합니다.
비전을 확인한 다음 그들은 ‘각각 그 힘대로’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합니다. 이들은 우선 '자기 형편에 따라' 이 일에 참여했습니다. 원어에서 이 표현은 신약에 한 번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번역하기가 좀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NIV, KJV에서는 각각의 능력에 따라, 그들이 할 수 있는 만큼, 그 힘대로(개역개정) 등 여러 표현으로 번역이 됩니다. 모두 똑같은 헌금을 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형편에 맞게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형편이 다릅니다. 경제적으로 인생 최고의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도 있고 아주 풍성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우리 교회의 교인수가 몇 명이니 한 명씩 얼마씩 내면 되겠다고 평균치를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 형편에서 최선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 이들은 '몫을 정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그냥 순간적으로 즉흥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생각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자신들의 경제적인 상황과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고 그 속에서 자기 몫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각각' 했다고 합니다. '각각'이라는 말에는 '각자 하나님 앞에서'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당신, 좀 많이 하십시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의논하고 서로 합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각자 이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야겠다는 비전을 받은 것만큼 자기 능력에 맞게 최선을 다해서 이 일에 참여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교회는 함께 순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교회는 어떤 한 사람의 기호와 철학과 취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맞춰질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적용 :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조화롭게 드러나는 곳입니다. 건강한 교회일수록 불협화음이 적습니다. 물론 아주 나쁜 교회도 불협화음이 없습니다. 하나의 음밖에 없고, 아무도 다른 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건강한 교회는 다양한 소리를 내지만 그 다양한 소리가 아름다운 화음으로 나오는 곳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이고, 우리가 꿈꾸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낸 우리는 자부심에 가득 찰 것이고 연주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함께 세우는 진실한 공동체인 교회는 그러한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