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안디옥교회 구성원처럼
설교본문 : 사도행전 13장 1절 ~ 3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1년 06월 27일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
설교요약 :
우리는 깊은 감동을 주고 여운을 남기는 영화나 드라마들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서 여러 다른 주제로 표현되지만 실력도 없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무엇인가를 이루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스포츠가 되었건, 음악이 되었건, 혹은 전쟁이 되었건 간에 각각 독특한 사람들, 결코 한 팀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룰 수 없는 그 무엇을 이루어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처음 교회였던 안디옥교회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안디옥교회 구성원처럼 하나 되려면?
1. 하나가 될 수 없습니까?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로 인해서 힘겨워 합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방식, 말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필수적이고 단순하다고 할 수 있는 먹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정말 사람들은 너무나 다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각기 제 소리와 제 음을 내면 아름다운 연주가 되지 않고, 불협화음, 듣기 싫은 소리, 고통을 안겨다주는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른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처럼 함께 아름다운 그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까? 어차피 가정이건, 교회이건, 직장이건,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니 자기 방식이 있을 수밖에 없고 불협화음은 불가피한 것입니까? 그러니 체념하고 적당히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해야 합니까?
2.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를 보면 오히려 서로 달라서 위대해진 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만났는데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내고 있는 겁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것은 '저렇게 다르니 하나가 될 수 없다'가 아니라 '저렇게 다른데도 오히려 하나가 되어 주님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나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사울이라는 다섯 명의 지도자가 나옵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또 얼마나 다른 사람들이었습니까? 이들이 어떤 지역에서 이곳 안디옥까지 왔는지를 보면, 바나바는 구브로, 즉 다메섹 옆쪽에 있는 구브로라는 섬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시므온은 북아프리카 쪽에서 온 사람이며, 루기오 역시 구레네 사람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북아프리카 쪽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나엔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이라고 하니 정통 유대 지역, 아마 예루살렘 출신일 것이고, 마지막으로 사울은 다소 출신입니다. 안디옥이라는 곳에 교회가 세워졌는데, 이 교회 지도자들의 출신이 참으로 다양합니다. 북아프리카, 다소, 예루살렘, 구브로 등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교회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이 교회의 지도자로 모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 바나바 (행 4:36)
2) 시므온 (막 15:21; 롬 16:13)
3) 루기오 (롬16:21)
4) 마나엔 (눅 8:3)
5) 사울(사도 바울)
3. 주 안에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1) 우리는 주안에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에는 중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통분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분을 중심으로 그들이 함께 성경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그의 종이다, 그분의 뜻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통된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의식을 가지게 되면 실제로 가정과 교회가 변화합니다. 예를 들어 가정을 보면 결혼 했을 때,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실로 엄청납니다. 배경의 차이, 성격의 차이, 의사소통하는 방식의 차이 등 다른 게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니 두 사람의 다른 것들을 조정해 줄 수 있는 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 가정에 주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또는 인생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2)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있는 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의 목적을 제시해 주시고 인생의 가치를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식을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저 어떤 개념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어떤 상징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분입니다.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구체적으로 잘 가르쳐주시는 분이십니다. 안디옥 교회의 다섯 명의 지도자는 주를 섬겨 금식하고 있었습니다(2절). 그들이 왜 금식을 합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안디옥 교회가 뭘 해야 합니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가 되었는데 우리가 뭘 해야 합니까? 저희들이 왜 함께 모였습니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한 주인을 섬기면 반드시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3) 서로 다른 우리는 사명을 위해서 서로 섬깁니다.
서로 다른 우리는 주와 주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서 함께 일하기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서로를 보면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나와 다를까?'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에 대한 시각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뜻이 있다면 그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같이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여기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까? 하나의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은 가능합니다. 교회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분명한 목적이 있다면, 여러 다른 사람이 모일수록 그 공동체는 더욱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적용 : 안디옥 교회를 사회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인류학적으로 분석하면 이는 성립될 수 없는 집단입니다. 경영학적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 다양한 환경에서 온 사람들이 무슨 일을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가 주후 70년이 지나 사라져버린 이후에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굉장히 오래도록 끼쳤던 교회로 교회의 역사에 찬란하게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위대한 지휘자이십니다. 그분은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중에서 우리가 가장 흠모하고 존경하고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다른 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한 팀으로 만들어 위대한 교회를 세우신 위대한 지휘자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속한 어떤 악단이라도 꽤 괜찮은 악단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서로 달라서 예수님 안에서만 정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