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승리의 확신
설교본문 : 에스더 7장 1절 ~ 10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0년 06월 28일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
설교요약 :
우리가 6월 한 달 동안 심각한 위기에 빠진 자기 민족을 구하기 위한 에스더와 모르드개, 그리고 하만과 아하수에로 왕의 은밀한 왕궁에서 있었던 일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드라마로 생각하면, 보이지 않는 연출가, 제작자, 감독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드러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속속들이 그 안에 배어 있습니다. 기도, 예배, 제사, 성전이란 말도 없이, 누가 봐도 세상 이야기 같은데, 이 흐름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6장과 7장의 행간의 의미를 좀 살피면, 먼저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을 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안식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두 번의 잔치를 했습니다. 왕의 마음이 열려서, 나라의 반이라도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냥 즉석에서 얘기해도 되는데 에스더의 핵심 전략은 왕과 하만의 관계를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분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말하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는가 할 때 응답의 확신이 올 때까지입니다. 이것이 정답이 있는 게 아니고 영적 센스이고 영적 민감성입니다. 에스더에게 좀 기다려야 한다는 영적 감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에스더 6장을 보면 에스더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100%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내가 뭘 열심히 해야 하는 게 아니고 맡기고 안식할 때 하나님께서 충분히 일하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최고 권력자 하만의 음모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왕후 에스더의 기도와 지혜로 드디어 위기를 벗어나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오늘의 위기 가운데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심을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살아가기에 이 땅에서 믿음의 자리를 지키고자 할 때, 우리에게도 부담이 있고, 부대낌이 있고, 불편함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신자는 하나님으로 인해 결국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승리의 확신’으로 에스더처럼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1. 영적으로 민감해야 합니다.
우리가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작은 죄도 간과하지 않는 영적으로 민감한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에스더서가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이란 단어도 안 나오고, 모르드개가 권력자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것 때문에 괘씸죄에 걸려서 이스라엘 민족이 위기에 처한다는 이야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은 새로운 권력자 하만을 소개하면서 '아각 사람'이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사무엘상 15장에 보시면 아각이 아말렉의 왕으로 나와 있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원수 나라입니다. 하만이 그 원수 나라 왕의 자손이라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의 영적인 아말렉은 무엇입니까?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것과 세상 가치관에 휘둘리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자녀교육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는 도도하게 흘러가는 세상 가치관이 너무나 큰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자녀에게 "너 그렇게 살면 안 된다"라고 권면하면 아이의 입에서 "아빠, 요즘 애들 다 그래요"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 아말렉인 이 세상 가치관을 지워버려야 하는 까닭입니다. 우리가 소홀히 여기는 작은 죄 하나가 우리와 우리 자녀를 망하는 길로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죄도 흘려 넘기지 않고 영적으로 민감하게 여길 때 승리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작은 죄도 간과하지 않는 영적으로 민감한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에스더서가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이란 단어도 안 나오고, 모르드개가 권력자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것 때문에 괘씸죄에 걸려서 이스라엘 민족이 위기에 처한다는 이야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은 새로운 권력자 하만을 소개하면서 '아각 사람'이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사무엘상 15장에 보시면 아각이 아말렉의 왕으로 나와 있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원수 나라입니다. 하만이 그 원수 나라 왕의 자손이라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의 영적인 아말렉은 무엇입니까?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것과 세상 가치관에 휘둘리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자녀교육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는 도도하게 흘러가는 세상 가치관이 너무나 큰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자녀에게 "너 그렇게 살면 안 된다"라고 권면하면 아이의 입에서 "아빠, 요즘 애들 다 그래요"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 아말렉인 이 세상 가치관을 지워버려야 하는 까닭입니다. 우리가 소홀히 여기는 작은 죄 하나가 우리와 우리 자녀를 망하는 길로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죄도 흘려 넘기지 않고 영적으로 민감하게 여길 때 승리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죄성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에스더처럼 승리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제어 욕구'라는 죄의 본능과 싸워야 합니다. 제어 욕구는 모든 것을 자신이 컨트롤하고자 하는 인간의 죄성입니다. 에스더서를 제어 욕구라는 관점에서 보면, 먼저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모든 것을 자기가 주도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제어 욕구로 충만합니다. 그런가 하면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의 또 다른 공통점은 분노를 꼽을 수 있습니다. 제어 욕구와 분노는 꼭 쌍둥이처럼 함께 다닙니다. 제어 욕구로 제대로 제어되지 않을 때 거기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분노가 분출되는 겁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왕후 와스디를 자기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게 되자 그녀를 폐위시켜 버립니다. 하만은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조정할 수 있었지만 모르드개만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자 그 민족을 말살시켜버리겠다고 결심합니다. 둘 다 제어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분출된 분노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더 가지려는 욕구를 줄여야 합니다. 내가 장악하려는 욕구도 낮아져야 합니다. 날마다 내 안에서 불쑥 불쑥 고개드는 베어 욕구를 다스리지 않고는 결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에스더처럼 승리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제어 욕구'라는 죄의 본능과 싸워야 합니다. 제어 욕구는 모든 것을 자신이 컨트롤하고자 하는 인간의 죄성입니다. 에스더서를 제어 욕구라는 관점에서 보면, 먼저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모든 것을 자기가 주도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제어 욕구로 충만합니다. 그런가 하면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의 또 다른 공통점은 분노를 꼽을 수 있습니다. 제어 욕구와 분노는 꼭 쌍둥이처럼 함께 다닙니다. 제어 욕구로 제대로 제어되지 않을 때 거기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분노가 분출되는 겁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왕후 와스디를 자기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게 되자 그녀를 폐위시켜 버립니다. 하만은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조정할 수 있었지만 모르드개만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자 그 민족을 말살시켜버리겠다고 결심합니다. 둘 다 제어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분출된 분노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더 가지려는 욕구를 줄여야 합니다. 내가 장악하려는 욕구도 낮아져야 합니다. 날마다 내 안에서 불쑥 불쑥 고개드는 베어 욕구를 다스리지 않고는 결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3. 탐욕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승리를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탐욕'의 위험성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제어 욕구가 타인을 지배하려는 외적인 양상이라면 탐심은 그것을 유발시키는 보다 근본적인 내면의 문제입니다. 자기 분수 이상의 것을 넘보는 태도가 탐심입니다. 내가 먹을 수 없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면 넘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분수를 지키면서 자기 자리, 자기 영역을 이탈하지 않으면 사탄의 유혹도 없습니다. 기웃거리지 말고 자족하면서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심리학과의 에드 디어 교수는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가진 것을 늘려가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둘째는 원하는 것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무엇을 더 가질까, 무엇을 더 키울까'를 고민하는 데서 이제 '무엇을 더 줄일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욕구로부터 자유해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승리를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탐욕'의 위험성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제어 욕구가 타인을 지배하려는 외적인 양상이라면 탐심은 그것을 유발시키는 보다 근본적인 내면의 문제입니다. 자기 분수 이상의 것을 넘보는 태도가 탐심입니다. 내가 먹을 수 없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면 넘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분수를 지키면서 자기 자리, 자기 영역을 이탈하지 않으면 사탄의 유혹도 없습니다. 기웃거리지 말고 자족하면서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심리학과의 에드 디어 교수는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가진 것을 늘려가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둘째는 원하는 것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무엇을 더 가질까, 무엇을 더 키울까'를 고민하는 데서 이제 '무엇을 더 줄일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욕구로부터 자유해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의 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① 영적으로 민감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고, ② 다른 사람이나 환경, 나의 본성을 제어하려는 죄성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하고, ③ 탐욕의 위험성을 항상 경계해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교만할 때 가장 약함) 현실은 비록 환난과 곤고와 박해와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로 둘러싸여 있더라도, 그래서 마음이 힘들고 무너질지라도 우리 안에 흔들림 없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가 마음 깊숙히 자리 잡아야 합니다. 지금 전염병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이 외적인 전염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도 깨어지게 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게 되고 여러 가지 근심과 두려움, 여러 가지 위기가 닥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에스더처럼 회개하면서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면 주께서 일하시고 이것을 통해서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견고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서게 만드시고 하나님께 맡기는 안식을 배우게 하시고 또 우리의 더러운 죄악들을 회개하고 주께 돌아가는 그런 계기가 되게 하십니다. 이 에스더서에 나오는 이러한 하나님의 역전과 반전의 간증이 우리 삶에서의 역전이 되고 반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