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성장해 가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꼭 기억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우리의 신앙도 시간에 따라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른으로 성장하고 그리고 부모가 되어 인생을 알아 가듯이 신앙도 그렇게 어린 시절에서 어른으로 그리고는 다시 부모로 성장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가장 중요한 것은 훈육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많은 자율권을 주고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아이는 자유의 고귀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유를 주기 보다는 적절하게 통제하는 것이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유익합니다. 이때는 부모가 조금 무서운 것이 효과적이겠지요. 성경에서 ‘하라!’ 또는 ‘하지 말라!’ 는 직접적인 명령이 많은 이유는 그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이 어린 신앙인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에도 훈육만 강요해서는 안 되고 때로는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어서 부모가 무섭지만은 않고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자주 초신자들의 기도에 응답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어린 신앙은 기도응답이 많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율법적이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조건을 걸고, 실리를 따지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어린아이의 신앙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고 우리는 어른 같은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경우는 이와는 전혀 다른 의미와 의도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른은 ‘하고! 안 하고!’가 더 이상 두려움이나 죄책감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랑의 관계를 기초로 한 신뢰와 자발적 희생으로 되어 집니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상대방이 무서워서라기보다는 상대방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듯 말입니다.
신앙도 이때부터는 단순한 율법적인 규율은 득보다는 실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자발적으로 희생의 기회를 찾아가야 하고 자신을 훈련해 가야 합니다. 이쯤 되면 기도 응답도 뜸해질 수 있지만, 그 나이에는 모든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가야 하고, 또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떼를 쓰는 것은 유치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를 진정한 어른이 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자녀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부모가 되어서 진정으로 남을 참아줄 줄 아는 성숙함이 생깁니다. 아기 때는 끊임없는 돌봄을 요구하고, 아이 때는 끊임없이 찡얼거려도, 그리고 사춘기가 되어서는 이유 없이 반항해도 받아줄 줄 아는 참을성과 이해심이 생깁니다. 또한 자녀의 모습이 결국은 나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교만하지 못하고, 겸손을 배워갑니다. 그런 부모의 사랑 안에서 자란 자녀들이 부모를 떠날 때 떠나보내는 고통을 통해서 인생의 또 다른 의미를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은 우리가 부모가 되어서 내 중심이 아니라 남을 중심에 두고 살 때입니다. 남을 섬기며 받아줄 때 인내를 배우고, 섬김을 통해서 고난을 알게 되고,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그리고 그 공로가 나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좋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의 신앙생활은 반드시 그렇게 믿음이 자라가는 과정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추석 명절 가운데 기도응답 받고 믿음이 자라는 기쁨의 간증을 가족들과 많이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후반기 새생명축제를 통해 목장마다 새가족이 더하여지고, 목장식구로서 성공하고, 목자목녀로서 성공하는 좋은 일들이 많이 나타나도록 기도해주시고 내가 축복의 주인공이 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늘 복 받으세요 한승엽 목사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