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려 사신 교회를 사랑하는 방법은?
물건의 값을 알면 다루는 손길이 달라집니다. 만 원짜리 접시는 툭 놓지만,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그릇은 두 손으로 받칩니다. 값이 태도를 결정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여기서 '사셨다'는 말은 값을 치르고 자기 것으로 삼았다는 뜻입니다. 그 값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들의 피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비싼 값을 치른 공동체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교회가 완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의 값이 그리스도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이 한 가지를 붙들면, 교회를 사랑하는 방법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첫째, 비난 대신 기도하는 입술을 갖는 것입니다
지난 몇 해, 한국 교회는 세상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잊을 만하면 사건이 터졌고, 목사라는 이름이 부끄러워 화가 날 만큼 답답한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상처받은 성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중에 마음에 이런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그 교회를 내 아들의 핏값으로 샀단다. 네가 그렇게 비난하면 내 마음이 아프단다." 맞습니다. 손이 잘못했고 발이 잘못했습니다. 눈도 귀도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몸의 머리는 여전히 예수님이십니다. 자식이 못나도, 잘못해도, 이상한 짓을 해도 부모는 속상해합니다. 남들이 그 자식을 욕하면 부모의 가슴이 먼저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아파하되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울분을 토해도 좋습니다. 속상해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정죄의 언어로 나가지 않게 하십시오. 최소한 우리 공동체만이라도, 넘어진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교회가 아니라 무릎 꿇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지친 사람을 안아주는 품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 하는 곳인지 물으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세상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그 짐을 내려놓는 곳이라고요. 우리 성도들 중에는 사업이 잘 안되는 분이 있고,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분이 있고, 최선을 다해도 돈을 제대로 못 받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주일에 교회 문을 밀고 들어옵니다. 그때 교회가 할 일은 그들의 짐을 다 끌어안고 힘과 용기와 희망과 꿈을 주는 것입니다. 예배 오기 전 '이혼하겠다' 했던 사람이 예배 후 '그래도 살아야지' 하고, '혼자 편히 살겠다' 했던 사람이 '그래도 함께 사랑하며 살아야지' 하고, 부도로 '못 살겠다' 했던 사람이 '다시 용기 내야지' 하는 그런 곳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는 것은 담임목사 한 사람이 아닙니다. 옆자리 성도의 눈빛, 손 한번 잡아 주는 것, "요즘 어떠세요" 하는 안부 한마디가 그 일을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두 번째 방법은 내가 그 품의 한 조각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조언 대신 기도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가장 자주 저지르는 실수는, 사랑한다면서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과해 보지 못한 사람은 힘들어하는 지체에게 쉽게 말합니다. "너 기도 안 해서 그래. 순종 안 해서 그래. 봉사 안 나와서 그래." 나름 조언이라고 한 말이 상대를 지하로 밀어 넣습니다. 가뜩이나 주저앉아 있는 사람을 더 위축되도록 만듭니다. 밑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가 있고, 지하인 줄 알았는데 땅굴이 있는 절망을 겪어 본 사람은 그런 말을 못 합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많이 힘들었겠다. 내가 기도해 줄게. 한 주간 하루 한 끼 금식하며 기도해 줄 테니 힘 좀 내자." 교회를 사랑하는 세 번째 방법은 어쭙잖은 조언을 삼가고, 기도로 곁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상처 입은 분노자가 아니라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넷째, 선한 일에도 절제하는 균형을 지키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한다면서 교회를 무너뜨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치우침입니다. 선교는 귀합니다. 그러나 선교'만' 강조하면 성도들이 지쳐 갑니다. 교육도 귀합니다. 그러나 교육'만' 하면 그것은 신학교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하나가 절대화되면 공동체는 조금씩 쪼그라듭니다. 또한 신앙생활은 교회 생활이 전부가 아닙니다.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느라 가정이 엉망이 되고 직장이 엉망이 된다면, 그것은 교회 생활을 잘하는 것이지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치우침을 싫어하시고 질서와 균형을 기뻐하십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네 번째 방법은 내 열심이 공동체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게 절제하는 것입니다.
2. 값 있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일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입니다. 사랑스러워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값을 알기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비난 대신 기도 한 줄을 올려 드리십시오. 지친 지체 한 사람에게 안부를 여쭈어주시기 바랍니다. 조언하고 싶은 입을 다물고 그를 위해 무릎 꿇고 기도로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작은 섬김들이 모여, 우리 안산중앙교회를 세상 어떤 공동체보다 작지만 강한 교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로 점점 세워져 나갈 것입니다.
하늘 복 받으세요 담임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