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하나님께 피하는 공동체
설교본문 : 시편 34편 8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6년 08월 09일
설교요약 :
인생을 살 때 도망칠 곳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사방이 막힌 것 같고,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그런 때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이 바로 그런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하던 다윗은 결국 원수의 땅, 블레셋 가드까지 흘러갑니다. 거기서 더 큰 위기를 만나 미친 척까지 해야 하는 인생 최악의 수치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밑바닥 자리에서 다윗은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장 깊이 맛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도 인생의 가장 캄캄한 밤 한가운데서, 다윗처럼 하나님께 피하는 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1.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습니다.
- 두려움이 만든 거짓 피난처 (삼상 21:10-15)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하다가 블레셋의 왕도 가드로 들어갑니다(10절). 가드는 다윗이 쓰러뜨린 골리앗의 고향이었고,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노래로 이미 다윗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땅이었습니다(11절). 스스로 원수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간 셈입니다. 결국 다윗은 아기스 왕을 심히 두려워하여(12절) 침을 수염에 흘리며 미친 체하는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합니다(13-15절). 두려움이 이끄는 결정은 언제나 또 다른 문제를 낳습니다. 가드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강한 자만 살아남는 세상의 표상이었고, 다윗은 그 논리 안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다 오히려 인생 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단 한 번도 물러선 적 없던 용사가 적들 앞에서 완전히 무너뜨려야 했던 순간, 아마 다윗의 생애 전체를 통틀어 가장 수치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상황을 모면하려다 오히려 더 초라해지는 순간, 두려움 때문에 나답지 않은 선택을 하고 돌아서서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는 순간 말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 하나님이 예비하신 참된 피난처 (삼상 22:1-5, 시 34:8)
가드에서 쫓겨난 다윗은 아둘람 굴로 피신합니다(삼상 22:1). '아둘람'이라는 이름 자체가 '피난처'라는 뜻입니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그리로 내려왔고, 뒤이어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까지 모여들어 사백 명 가량의 공동체가 됩니다(2절). 바로 이 시기에 다윗이 지은 시가 시편 34편입니다. 표제어는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밝힙니다. 가장 수치스러웠던 순간을 지나온 다윗이 고백한 것이 바로 오늘 본문, 시편 34편 8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다윗은 인생이 형통할 때가 아니라, 가장 밑바닥에서 아무도 자신을 도울 수 없던 그 순간에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심을 몸으로 맛보았습니다. 다윗은 가족도 벗도 함께 있어 줄 수 없던 그 아둘람 동굴(피난처)속에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온 몸으로 맛본 것입니다.
적용 :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다윗의 이야기 그 너머를 봐야 합니다. 다윗은 수치를 피하려고 스스로 침을 수염에 흘리며 미친 척했습니다(삼상 21:13). 아둘람에 모인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의 공동체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훗날 예수님께서 부르실 공동체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다윗이 사백 명의 실패자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듯이, 예수님은 죄와 실패와 수치로 무너진 모든 사람의 참된 우두머리요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큰 재난이 일어나면 대피소 문 앞에서 신분증이나 자격을 묻지 않습니다. 다친 사람, 집을 잃은 사람, 갈 곳 없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문을 두드릴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고 오늘 우리의 목장은 바로 그런 영적 대피소가 되어야 합니다. 잘 정돈된 사람들의 전시장이 아니라, 상하고 지친 영혼들의 응급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세 가지로 이 말씀을 삶에 적용합니다. 첫째, 두려움이 이끄는 판단을 멈추고 결정하기 전에 먼저 십자가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둘째,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아둘람처럼 낮고 부끄러운 자리일지라도, 그 자리를 예배의 자리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이 나를 침 뱉음과 수치에서 건지신 것처럼, 나도 지치고 상처 입은 이들을 품는 작은 예수로 살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