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확실한 믿음
설교본문 : 배드로전서 1장 7 ~ 9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6년 02월 01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오늘 말씀은 “확실한 믿음”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합니다. 그들은 게으르거나 무기력해서 떠도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기 위해 집과 자리와 안전을 내려놓아야 했던 사람들입니다. 믿음을 지키려는 선택이 그들을 ‘흩어진 나그네’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더 놀란 것은 그들이 단지 버티는 정도가 아니라, 여러 시험 가운데서도 “오히려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벧전 1:6). 그 기쁨의 비밀이 곧 정금 같은 믿음, 확실한 믿음입니다. 베드로는 흩어진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는다”(벧전 1:5). 그런데 그 보호는 편안한 자리가 아니라, 때로는 시험과 고난을 통과하게 하시는 보호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으면 고난이 사라질 거라 생각하지만, 베드로는 반대로 말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이 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믿음이 있다고요(벧전 1:6). 시험이 오는데 기뻐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믿음입니까? 확실한 믿음은?
1. 금보다 귀한 믿음입니다
확실한 믿음은 금보다 귀한 믿음입니다. 여기서 ‘금’은 24K 금덩어리만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에서 붙잡고 싶은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 소망, 목표, 진학, 취업, 승진, 자녀의 성공, 꿈과 계획, 사람의 인정까지 포함합니다. 우리는 평소엔 두 손에 금과 믿음을 함께 쥐고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 믿음을 택하고 금을 내려놓으면 금보다 나은 믿음, 믿음을 뒤로 미루고 금을 붙잡으면 금보다 못한 믿음입니다. 결국 믿음의 자리는 말로 증명되지 않고, 선택으로 드러납니다. 가정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청년 때는 믿음이 좋아 보이지만,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라는 금덩어리가 등장합니다. 피곤함과 책임 앞에서 예배가 밀리고, 신앙은 “나중에”가 됩니다. 아이가 고3이 되면 금덩어리는 황금덩어리가 됩니다. 그 앞에서 신앙은 더 쉽게 미뤄집니다. “지금은 교회보다 공부가 먼저야. 대학 가서 다시 하면 돼.” 부모가 자녀의 믿음을 말리고, 예배를 양보시키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대학은 들어갔는데 믿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 많이 봅니다. 대학 가면 “자랑할 거리”가 생겨 잠깐 교회를 나오다가, 3, 4학년이 되면 취업이라는 금덩어리가 등장하고, 취업 후에는 승진이라는 금덩어리, 결혼이라는 금덩어리, 승진이라는 금덩어리가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믿음은 계속 뒤로 밀립니다. 이런 반복은 그 사람 안에서 믿음이 금 아래에 놓여 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대로 같은 현실 속에서도 믿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지는 현실이 될지라도, 주일 봉사를 내려놓지 않고 예배를 지키며, 사람들이 “바보 같다” 말해도 믿음을 택합니다. 손해처럼 보여도 결국 주님을 택하고 예배를 택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금보다 귀한 믿음, 확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벧전 1:7). 믿음은 취미 생활이 아닙니다. 확실한 믿음은 좁은 길이지만 영원한 생명을 선택하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4). 확실한 믿음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믿음의 선택을 감당합니다.
2. 고난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확실한 믿음은 고난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고난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난은 믿음을 단련하는 자리입니다. 베드로가 놀란 것은, 그들이 고난을 만나 잠깐 근심하지만 결국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는 사실입니다(벧전 1:6). 어떻게 고난이 기쁨으로 바뀔 수 있습니까? 이유는 그들이 고난을 보는 눈에서 멈추지 않고, 고난 뒤편에 주님이 주실 축복을 미리 보면서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무엇을 보느냐’의 싸움입니다. 고난을 보느냐, 고난 너머의 예수님을 보느냐의 싸움입니다. 고난 자체를 묵상하면 무너집니다. 그러나 고난 뒤편의 주님의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바라보면, 얼굴이 다시 환해집니다. 로마서도 같은 원리를 말합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롬 5:3-4). 또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롬 8:18)고 합니다. 고난과 영광을 함께 놓고 비교해 보면, 고난이 아무리 커도 장차 하나님의 자녀가 받을 영광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고난 뒤의 영광이 훨씬 더 크게 보여집니다. 그러면 고난이 우리를 삼키지 못합니다. 또한 고난은 믿음을 정금으로 만드는 풀무불입니다. 금을 정금으로 만들려면 불순물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금덩어리의 불순물은 풀무불에 넣어야 불순물은 타고, 금만 남게 됩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고난의 불은 믿음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불순물을 태우는 불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통과한 믿음은 순금이 되고,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욕하고 떠나는 믿음은 도금으로 드러납니다. 욥이 그 예입니다. 욥의 아내는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떠났고, 욥은 고난을 지나며 확실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순금 믿음은 고난이 왔을 때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왜 이런 일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안 계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고난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정금 같은 믿음입니다.
적용 :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손에 든 금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금이 믿음과 충돌할 때, 무엇을 놓겠습니까? 또한 지금의 고난은 여러분을 무너뜨리려는 파도가 아니라, 믿음을 정금으로 만들려는 하나님의 풀무불일 수 있습니다. 고난을 바라보다가 잠깐 근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곧 시선을 들어, 고난 뒤편에 준비하신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우리 믿음은 금보다 귀해지고, 고난을 이기는 확실한 믿음으로 자라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확실한 믿음의 선택을 요구합니다. 나는 금과 믿음이 충돌할 때 무엇을 붙들 것인가? 주님은 고난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꺾으시는 분이 아니라, 믿음을 더 귀하게 만들어주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예배를 택한 여러분, 금보다 귀한 믿음을 붙든 여러분을 주님이 반드시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세우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얻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벧전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