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구원의 능력입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사도 바울은 “복음은 능력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단순한 좋은 소식이 아니라 살리는 능력, 변화시키는 힘, 세상을 뒤집는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그는 이 능력을 “구원의 능력”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 복음은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단순한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사람을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며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권력의 수도였고, 철학과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한 유대 청년의 이야기를 ‘능력’이라 말하는 것이 어리석음으로 들렸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담대히 말합니다. “그 십자가야말로 능력이다. 로마의 칼은 사람의 몸을 다치게 할 수 있지만, 복음은 사람의 영혼을 영원히 살린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복음을 비웃습니다. 세상은 “실력이 능력이다, 돈이 능력이다, 인맥이 능력이다”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복음이 능력이다.”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의 마음이 바뀌고, 가정이 회복되고, 도시가 변합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다시 일어납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절망이 희망이 되고, 미움이 사랑으로 바뀝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나 중심의 왕좌’가 무너지고 ‘하나님 중심의 삶’이 구원의 확신 가운데 건강하게 점점 세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능력입니다.
‘능력’이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두나미스(δύναμις) 입니다. 영어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즉, 복음은 폭발적인 힘을 가진 생명력이라는 뜻입니다. 한 번 복음이 마음에 심겨지면,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삶의 궤도를 완전히 뒤집어 버립니다. 그래서 복음은 ‘들리는 말씀’이 아니라 ‘터지는 생명’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은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혈통이나 학벌이 아니라 ‘믿음’을 통로로 삼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차별이 없습니다.
가난한 자에게도, 부한 자에게도, 실패한 자에게도, 성공한 자에게도 동일하게 임합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 믿음은 단순한 ‘지식적 동의’가 아니라, 전인격적인 ‘만남’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을 바꾸는 결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제 복음이란 단어가 익숙해서 그 능력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복음은 단지 ‘들려야 할 소식’이 아니라 ‘살아내는 능력’입니다. 예배 때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기도하며 눈물을 흘릴 때마다, 그 복음의 능력이 내 안에서 다시 생명력 있게 폭발하길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길 능력을 얻습니다. 세상이 던지는 두려움보다 복음의 소망이 더 크기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복음은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바로, 우리 모두를 다시 살릴 구원의 능력이 됩니다. 그 복음이 당신의 가정 안에서 역사하고, 당신의 직장 안에서 살아 움직이길 바랍니다. 복음이 내 안에서 역사할 때, 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담대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번 가을 열매맺는 특새에 최선을 다해 함께 섬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간 추수감사절을 성경대로 지킴으로 약속대로 축복받는 안산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출애굽기 23장 14–17절, 신명기 16장 10–17절).
하늘 복 받으세요 담임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