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
설교본문 : 에베소서 6장 23절 ~ 24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5년 10월 19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에베소서는 ‘다시 성도로, 다시 교회로, 다시 세상으로’ 우리를 부르며, 마지막 두 절(6:23-24)에서 네 단어로 결론을 맺습니다. 이 단어들은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바로 평안, 믿음,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1. 평안입니다.
첫째 평안을 붙들고 살게 됩니다. 이 평안은 출처가 분명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엡 6:23).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원수 된 죄의 담을 허무시고 화목을 이루셨습니다. 더 이상 두려움의 피난민이 아니라 자녀의 자리로 초대받았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음성은 심판의 천둥이 아니라 목자의 음성입니다.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야”그 인도하심이 들립니다. 둘째, 주님은 나 자신과의 불화를 끝내십니다. 죄로 왜곡된 자아와 창조 때 받은 참된 나 사이의 전쟁을 십자가의 피로 종결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울 앞에서 비교와 혐오가 아니라 창조주의 작품을 바라보듯 나를 축복합니다. 잘생김·못생김의 잣대가 아니라 유일무이함의 존귀로 서게 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이 지으신 걸작품, 대체 불가한 자녀”라는 이 고백이 평안입니다. 셋째, 주님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해시키십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이웃과 공동체를 한 새 사람으로 엮으십니다. 화해의 시작은 기술이 아니라 복음의 평안입니다. 내 마음의 전쟁이 그치니 관계의 전쟁도 휴전합니다. 평안은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통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이 주는 평안은 조건부입니다. 상황이 좋을 때만 주고, 상황이 변하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폭풍 한복판에서도 우리를 붙듭니다. 물결이 발등을 넘을 때, 그분은 물 위를 걸어 우리에게 오십니다.
2. 믿음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믿음은 내가 쥐어짜는 의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심어 주시는 씨입니다. 그러므로 자랑은 사라지고, 감사가 남습니다. 이 믿음은 시작만 선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2) 믿음은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통로, 흔들리는 심령을 세우는 기둥입니다. 그리고 전장으로 나갈 때 믿음은 방패가 됩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엡 6:16) 의심의 화살, 낙심의 화살, 비교의 화살이 빗발쳐도 방패를 들면 꺼집니다. 방패를 내리면 관통당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믿음의 방패를 드시기 바랍니다. 가짜 믿음은 어디서 오나요? 나로부터 옵니다. ‘내가 열심히 해서’, ‘내가 해냈다’는 행위의 신뢰입니다.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지만 중심에 내 공로가 앉아 있습니다. 또 다른 유사품은 자기암시입니다. “할 수 있다”는 말 천 번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는 복음의 한 마디가 더 무겁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능력은 내 결심의 크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이렇게 자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입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귀가 열리면 마음이 열립니다. 기도로 붙들 때입니다. 응답의 속도가 아니라 응답하시는 분을 바라봅니다. 순종으로 실천할 때입니다. 한 걸음의 순종은 백 가지의 결심을 이깁니다. 작은 순종이 큰 확신을 낳습니다.
3. 사랑입니다.
세 번째 단어는 사랑입니다. 에베소서는 처음부터 사랑으로 시작했습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선택의 이유가 사랑이고, 거룩의 분위기가 사랑입니다. 성장의 방식도 같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엡 4:15) 그리스도를 닮는 길은 논쟁이 아니라 사랑의 진실함입니다. 그리고 생활의 걸음도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엡 5:2) 여기서도 출처가 중요합니다. 세상의 사랑은 유통기한이 짧습니다. 감정은 달라지고, 약속은 약해집니다. 계산이 섞이고, 상처가 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사랑은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분의 사랑이 내 안에 부어지면(롬 5:5) 사랑은 소비가 아니라 공급이 됩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너에게 준 사랑을 다시 거두어 오기 위해 사랑하지 않겠다. 나는 하나님께 계속 공급받는다.” 받으려고 애쓸수록 메마르지만, 공급을 받을수록 흘러넘칩니다. 사랑의 성장은 세 가지로 보여집니다. 머무는 사랑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시간을 확보합니다. 말씀과 기도, 예배에 머무르면 심장이 점점 하나님의 박동에 맞춰지게 됩니다. 흘러가는 사랑입니다. 가까운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흘려보냅니다. 축복의 말, 작은 도움, 용서의 결정. 사랑은 행동으로 성숙합니다. 지속되는 사랑입니다. 상황이 아니라 언약에 근거합니다. 감정의 높낮이보다 십자가의 변함없음을 신뢰합니다. 주님께로부터 시작할 때 그 사랑은 끊기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에게서 흐르는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히 13:8) 변함없는 큰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