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지체가 되어 섬기는 삶
“우리는 서로 지체입니다”(엡 4:25). 지체란, 떨어져 있으면 죽고 붙어 있으면 삽니다.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관계의 기술입니다. 그 첫 걸음은 다른 사람을 세우는 말, 심장을 뛰게 하는 공감, 몸을 움직이는 행함입니다. 말–공감–행함이 같은 방향으로 흐를 때, 우리 안산중앙교회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환대의 공동체가 점점 될 수 있습니다.
1. 말로 섬겨야 합니다 — “사실”을 넘어 “세움”으로
바울은 말합니다. “거짓을 버리고,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5, 29). 여기서 참됨은 단순한 팩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이고, 목적은 '세움(오이코도메)'입니다. 맞는 말이 언제나 은혜로운 말은 아닙니다. 옳은 말도 틀린 때, 틀린 톤, 틀린 태도로 전하면 성경이 말하는 '썩은 말'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불편한 진실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사랑 안에서, 때에 맞게 전하면 그 말은 은혜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언어의 작은 습관이 필요합니다. 진리의 말인가?, 꼭 필요한 말인가?, 타이밍이 맞는가? 말투도 바꿔 봅시다. “왜 그랬어?” 대신 “무슨 일이 있었어?” 심문에서 초대로, 추궁에서 경청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웨일즈 부흥의 일화처럼, 욕설에 길들여졌던 나귀조차 주인의 친절한 언어에 당황했듯, 복음은 입술에서 시작합니다. 말이 바뀌면 가정의 공기가 달라지고, 아이의 자존감, 배우자의 표정, 우리 공동체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말로 이기라고 부름받지 않았습니다. 서로 지체가 되어 말로 세우라고 부름받았습니다.
2. 공감으로 섬겨야 합니다 — “함께 울고”가 기적의 문을 엽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먼저 우셨습니다(요 11:35). 공감은 해결을 미루자는 게 아닙니다. 해결이 들어설 공간을 여는 일입니다. 마음의 문이 닫혀 있으면, 최고의 조언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상대의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공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10·2·1을 연습합니다.
10분 경청 - 상대의 말을 끊지 않고 잘 듣습니다. 고개와 짧은 추임새만으로.
2문장 공감 - 내용 한 줄 요약, 감정 한 줄 이름 붙이기.(“오늘 많이 힘들었네요. 그래서 더 지치고 힘들었군요.”)
1가지 도움 제안 - 허락을 묻고 작게, 구체적으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OOO인데, 너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해볼께” 욥의 친구들은 옳은 말을 틀린 그릇에 담아 상처를 키웠습니다. 반대로, 영화 밀양의 종찬은 정답 대신 곁을 내주었습니다(종찬 역:송강호 배역). 공감은 이웃의 심장에 산소를 공급합니다. 서로 지체가 되어 공감으로 섬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3. 행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 “정직한 수고 → 구제”의 선순환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구제할 수 있도록 선한 일을 하라.”(엡 4:28) 복음은 멈춤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멈춘 자리에 사랑의 섬김으로 흘려보내고 풍성하게 채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씨와 양식을 주십니다(고후 9). 먹을 양식은 감사로 누리고, 뿌릴 씨는 기쁨으로 하나님께 심고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삭개오는 중단을 넘어 보상과 나눔으로 응답했습니다. 우리의 손끝에서 흘러간 작은 씨앗들이 내일의 간증이 됩니다. 우리 안산중앙교회는 그 작은 씨앗들이 점점 강처럼 흐르는 은혜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신앙의 근육은 반복으로 자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지체가 되어 말로 세우고, 공감으로 붙들고, 행함으로 세상에서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대조 공동체, 대안 공동체를 함께 이루어가는 안산중앙교회가 점점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늘 복 받으세요 담임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