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시편 73:28)
시편 73편 28절에서 시편 기자 아삽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이 고백은 인생의 수많은 혼란과 비교, 절망을 지나 다시 중심을 잡은 영혼의 고백입니다. 세상은 강한 자들이 승리하고, 가진 자들이 이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다시 ‘가까이’ 할 때 그는 알게 됩니다. 인생의 진짜 복은 소유가 아니라, 동행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진정한 동행은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도 끝까지 함께하시는 분, 나의 추함을 아시고도 등을 돌리지 않으시는 분, 바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1. 엠마오의 두 제자, 그리고 우리
누가복음 24장을 보면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은 듯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그들의 마음은 무너졌고, 발걸음은 낙심으로 무거웠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걷기 시작하십니다. 말씀을 풀어주시고, 함께 떡을 떼실 때 비로소 그분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 24:32) 이것이 바로 동행의 본질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감정이 느끼지 못해도 예수님은 이미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십니다.
2. 고린도후서 4장의 동행 – 질그릇 속의 보배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에서 ‘동행’의 비밀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이라.” (고후 4:7) 우리 자신을 보면 질그릇 같습니다. 깨어지기 쉽고, 흠 많고, 연약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복음은, 그 질그릇 안에 예수님이라는 보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넘어져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동행하시는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의 동행은 문제를 피하게 하지 않지만, 그 문제 속에서도 우리를 붙들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부활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내 삶 속에 살아 역사하고 계시느냐가 복음을 아는지의 기준입니다. 우리 안산중앙교회는 ‘함께 걷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과 함께 걷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즉, 예수님과 동행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혼자서 신앙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나눌 때 주님이 우리 공동체 가운데 ‘임재하신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가장 깊은 위로이고, 가장 큰 능력입니다. 내 인생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길이 부활을 향한 길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질그릇 같은 인생도 보배이신 예수님으로 빛나게 하시기 바랍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지금도 예수님이 함께 걷고 계심을 믿고 그 동행의 발걸음을 우리 자녀들에게, 다음 세대에게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말로만 전하는 신앙이 아니라, 함께 걷는 삶으로 보여고 행함으로 본을 보이는 믿음입니다.
하늘 복 받으세요 담임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