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여호와, 나의 목자
설교본문 : 시편 23편 1절 ~ 6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4년 08월 11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유명해진 후 그는 ‘풀꽃 문학관’을 개설했습니다. 나태주 시인은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하셨습니다. 교장까지 지내셨습니다. 그는 이처럼 귀한 시를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를 어린이들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은 기독교인인데 그래서 기독교 방송에 출연하여 당신의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풀꽃’시를 소개한 후 이 시를 쓰게 된 경위를 나눕니다. 처음에는 어린이들이 말을 안 들어서 많이 힘드셨다고 하십니다. 아이들에게서 좋은 면 보다는 나쁜 면이 훨씬 많이 눈에 들어 온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처럼 한심한가’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깨달음이 온 것입니다. 역설적입니다. 어린이들이 말을 잘 들었더라면 이렇게 모든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시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도 23편 이 위대한 시를 짓게 된 계기는 나태주 시인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상상하며 이 시를 저는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는 부족함이 없는 인생은?
1. 연명이 아닌 사명의 삶입니다.
다윗의 이 위대한 시는 왕궁에 살면서 쓰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다윗은 10년간 사울왕에게 쫓겨서 광야에서 도망자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없는 것 천지입니다. 모든 것이 그토록 갖고 싶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친구, 무엇 보다도 집…. 이 부족함을 이길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런 관점에서 나머지 시를 읽으면 금방 머리에 떠오릅니다. 다윗의 삶 속에서 만난 하나님은 목자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곧 다윗은 날마다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를 그리워합니다. 자기가 있는 곳은 험한 곳이니…. 그뿐 아닙니다. 영혼의 피폐함도 종종 느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자주 거쳐야 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원수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이처럼 도저히 여호와께서 목자라면 겪지 않을 경험을 하고 또 하고 또 하곤 했던 것입니다. 자기의 삶은 부족으로 없는 것으로 가득 넘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목자라고 부를수 없는 현장에서 그는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어느덧 모든 것이 변화되어 집니다. 2절,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부족함 가운데서 여호와를 목자라고 고백하는 순간 하나님과 놀라운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여호와가 목자면 자기는 무엇이 되죠? 목자의 양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원래 목동이었습니다. 곧 어린 목자였습니다. 누구 보다도 목자와 양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목자인 자신이 양들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고 어떻게 해 왔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목자인 자신과 양들의 관계가 여호와와 자신의 관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목자는 늘 양들을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합니다. 목자는 양들이 연명하는 삶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명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2. 치유하고 돌보시는 삶입니다.
다윗은 양의 많은 특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양의 특징을 생각하면서 이 시를 지은 것입니다. 양의 특징이 있습니다. 양은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습니다. 곧 양들은 항상 배고픈 것입니다. 항상 뭔가 부족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목자로 고백하는 순간 배고픔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목자는 누구보다도 양들의 배고픔을 잘 압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여호와는 자기를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배고픔 가운데서 고백하곤 했던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렇게 그는 하나님의 양이 되어 간 것입니다. 결국 그의 삶은 풍족함으로 채워질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양으로서 두번째 축복을 고백합니다. 3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양의 특징은 늘 배고픈 것인데 다윗도 자신의 이 모습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배고픔 때문에 종종 생기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요즘 이스라엘에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관광객들이 버린 플라스틱까지 양들이 집어삼켜서 창자가 찢겨 죽는 사태도 종종 일어난다고 합니다. 다윗도 배고픔 때문에 종종 실수도 했을 것입니다. 사실 왕이 된 후 물질의 배고픔이 아닌 다른 배고픔이 다윗을 늘 괴롭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밧세바와 간통한 범죄였습니다 이 일은 왕이 된 후에 생긴 일이지만 이처럼 다윗도 실수할 수 있는 가능성 가운데 살았던 사람임은 틀림 없습니다. 한편 목자는 양들의 약점들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들의 실수를 자주 자주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목자로 삼는 양들을 목자는 다시 그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당신의 양들이 그냥 죽는다면 목자의 이름 곧 여호와의 이름이 크게 손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목자되신 하나님은 어떻게든 살리십니다.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적용 : 다윗의 자기 인생의 마지막 고백이 6절입니다.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은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주님 부르실 때까지 평생 예배자로 살았고 어떤 상황에도 예배하는 예배자로 살았고 오직 한 분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어린 양 한 마리로 살았던 예배자였습니다.
시편 23편을 묵상하며 한 신학자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어떤 일도 주님의 주권과 관계 없이 생겨날 수 없음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주님은 결코 자리를 비우시지도 않으시고 수동적이거나 무반응이거나 능력이 없지 않으시다. 도리어 언제나 함께 하시고 능동적이시고 책임을 지시고 전능하시다. 그는 결코 죽지 않으시고 언제나 살아 계시고, 주무시지 않으시고 항상 깨어 계시며, 결코 관심 없지 않으시고 언제나 주목하시고, 목적없이 기다리시지 않으시고, 도리어 기다리는 듯 하고 양보하는 듯 하는 때에도 언제나 주도권을 잃지 않으신다. 이처럼 주님은 피조물과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