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안고 걸으신 길
설교본문 : 신명기 1장 29절 ~ 33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4년 06월 30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부모가 자기 자녀가 어려울 때 가만히 있겠습니까? 내버려 두지도, 가만히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그의 백성이라는 신분을 한 시도 잊지 마십시오. 그래야 쓸데없는 두려움과 불안에 부들부들 떨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자기에게 언제 닥칠지 모를 불행한 사건, 즉 질병이나 죽음, 불의의 사고 혹은 실패 같은 불상사 등입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이 세 가지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마서8:15)라 부를 수 있는 양자의 영, 아들의 영을 주셨습니다. 종은 눈치를 살피며 늘 두려운 마음으로 주인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의 영이 아닌,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하나님을 부르고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아들의 영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안아주심을 누리는 것은?
1.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똑똑한 사람입니까? 그런데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까 자기의 지혜가 쓰레기 같더라고 고백합니다. 목욕탕 가면 카운트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귀중품은 보관함 맡겨 주십시오.’ 그리고 뒤에 이렇게 붙어 있습니다. ‘맡기시지 않은 물건은 책임지지 않습니다.’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모든 염려를 내게 맡겨라 맡기지 않은 염려는 나도 책임 안진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주님께 맡긴 염려는 더 이상 니가 염려하지 마라 내가 도와주겠다. 너희 문제가 네가 가지고 있으면 네 문제가 되지만 나에게 맡기면 그때부터 주님이 해결하실 문제가 된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라. 내가 해결 못할 문제는 없다.’ 우리에게는 풍랑이 너무 크지만 그래서 베드로는 풍랑 때문에 너무 두려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풍랑을 밟고 오시면서 풍랑도 예수님 발밑에 두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기도의 제목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주의 종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걸어온 길을 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무엇을 보았습니까? ‘너희의 행로 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너희의 행로 중에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번역을 하면 ‘너희의 걸어온 길에서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광야에서 너희의 걸어온 길에서 내가 함께 했던 것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왜 이 말씀을 하십니까? 그러니까 가나안에서도 함께하겠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지금 원어를 찾다 보니까 한 단어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든’이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넣어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가 아니고 너희가 걸어온 모든 길’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길에서 함께 했다는 겁니다. ‘지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아 홍해를 건너는 그때부터 지금 요단강 앞에 이때까지 40년 동안 내가 앞의 20년은 도와줬고 뒤의 20년은 너희끼리 알아서 하라고 한 게 아니라 모든 길에서 내가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단 한 순간도 떠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렇게 인도해 오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군대 있을 때만 힘내라고 함께하시고 지금은 떠나신 분이 아니라 시집와서 어려울 때만 함께하시다 지금은 떠나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여러분의 인생의 길 가운데 함께하시고 이번 6개월 간에도 함께하셨으니 남은 후반기 6개월에도 함께하실 줄로 믿습니다.
적용 : 아무리 입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불러도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안아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면, 그래서 나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 사람은 빈껍데기 그리스도인 입니다. 누군가에게 안긴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데서 그치는 메마른 행위가 아닙니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서로 포옹을 한 후 집에 돌아와서 아직도 안겨 있는 듯, 흥분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은 머리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안긴다는 것은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행위입니다. 오늘부터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행하실지 또 기대합시다. 광야에서 지나온 35년 동안 우리 교회가 은혜의 단비와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다면 주님께서는 오늘도 말씀하시는 겁니다. 앞으로의 길도 내가 너희와 함께 할 것이고. 장막칠 곳을 찾을 것이고. 영원히 소생함을 얻을 것이고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성령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또 오늘의 삶에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