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그가 먼저 사랑함이라
설교본문 : 요한1서 4장 16절 ~ 19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5년 02월 23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우리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와 놀라운 신비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얘기하면 이미 그 말에는 따르는 결론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에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너희도 이렇게 사랑해라’라고 성경에 나온 대로 생각이 따라오게 됩니다. 맞는 얘기지만 너무 서둘러서 윤리적인 명령이 우리에게 들어오기 때문에 오히려 이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서 듣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신앙을 쉽게 규범화하고 도덕화해버리는지를 쉽게 보여주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경험적으로 알아감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자리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내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느냐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느냐에 따라서 이 사람의 자기 인식과 가치관, 우주관과 세계관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창조주 하나님을 어떠한 이미지로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과 우주를 바라보는 그 눈이 달라지게 됩니다. 또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느냐에 따라서 하나님 앞에 있는 나와 이웃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심판자라고 믿고 있으면 하나님 앞에 있는 나는 의인이 아니면 죄인 둘 중에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고 있다면 누가 뭐라고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기 이미지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는데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느냐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가 사람마다 다양한데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①사랑은 논리의 언어가 아니고 경험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사랑이시다라고 내가 믿고 있다면 우리 안에는 이미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사랑이다라고 믿고 있다면 내가 가진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 인간관과 자기 인식의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바로 이 관점에서 보여지고 느껴지고 해석이 되게 됩니다. ②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속성이 생각보다도 복잡하기 때문입니다(사울왕의 경우-진멸하라, 요나의 경우-아끼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온 우주를 사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인간이 악해지니까 홍수를 보내셔서 세상을 멸하시게 됩니다. 또 그 심판하시는 중에 당신이 창조하신 짐승을 암수 한 쌍씩 노아의 방주로 들여보내서 구원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심판하시고, 심판하시고는 또 사랑하시는 모습이 계속 반복됩니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성도는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됩니다. ‘하나님 저는 더욱 하나님을 알아가고 싶습니다. 주님을 더욱 배워가야 됩니다. 주님을 더욱 경험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 끊임없이 저는 새롭게 변화되어야 됩니다’하는 이 고백이 있어야 됩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언제든지 틀릴 수 있기 때문에 말씀 안에 겸손히 교정할 수 있는 ‘겸손의 그릇'을 가져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아버지십니다.
예수님이 소개하는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해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또한 ‘창조주 하나님은 바로 너희의 아버지이시다’라고 말씀해주십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얘기였습니다. 하나님은 음지와 양지에 골고루 비를 뿌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착한 사람뿐만 아니라 악한 사람들도 하나님이 돌이킬 수 있도록 도우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그래서 죄인과 소외된 사람들을 품에 안고 걸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계명을 만들어두었는데 우리 예수님은 ‘안식일에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시며 안식일에도 환자를 고쳐주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보고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이 갈릴리의 선지자가 다 부숴버리는 것처럼 느낀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이 둘 사이에 정면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섬김을 위해서라도 이 갈릴리의 선지자는 죽어야 된다고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생명의 복음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인생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려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십니다. 명령한다고 염려와 두려움이 없어집니까? 불안해하지 말라고 권면한다고 불안함과 두려움이 없어집니까? ‘염려하지 마, 두려워하지 마, 하나님이 다 돌보아주셔!’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지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마음은 내 안에 있는 죄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질병과 죄악을 가져오는 병증의 뿌리가 해결되지 않으면, 내 내면의 증상들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이 이 병증의 뿌리를 고치신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귀하고 사랑받고 있는지를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십니다. 그것을 느끼면 신기하게도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이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모든 불안과 염려가 날아가 버리게 됩니다. 가슴에 일던 세상의 헛된 바람이 사라지면 성령의 새바람이 내 안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 : 사랑하는 여러분, ‘내 백성아 내 자녀야 내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을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내주었다. 거친 세상에서 믿음으로 이기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너는 결국 다 잘 될 것이다. 나는 네가 은혜 안에서 강하고 담대하길 바란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이 사랑 안에서 우리 주님을 더욱 신뢰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크신 사랑 안에 거하고 이 사랑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연습을 이 땅에서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그 사랑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될 때에 이것이 성도의 최우선 되는 분별의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연습하셔서 때가 되었을 때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풍성한 삶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래서 머리로 알았던 하나님을 이제는 가슴으로 알고, 내 영혼으로 알고, 내 삶으로 경험하여 알게 되는 축복이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 안에서 내 존재가 새롭게 변화되어 영원토록 하나님의 먼저 사랑해주신 그 사랑 안에 거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